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최순실 게이트
1.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남북관계
-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대북정책 기조로 제시했습니다.
- 이는 강력한 억지력을 바탕으로 남북 간 신뢰를 형성하고, 작은 합의를 쌓아가며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구상이었습니다.
- 개성공단 잠정 중단과 전면 가동 중단:
- 2013년 3월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응해 정부는 개성공단 가동을 잠정 중단했습니다.
- 2013년 8월 상호 출입 제한이 해제되며 공단이 재가동되었으나, 2016년 2월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 발사에 따라 전면 가동이 중단되었습니다.
- 8·25 합의와 남북 고위급 회담:
-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위기가 고조되자 남북은 8·25 합의를 통해 사태를 타결했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간 핫라인 설치, 이산가족 상봉 등이 합의되었습니다.
- 11월에는 남북 고위급 회담이 개최되는 등 관계 개선의 실마리가 보였으나 이후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좌초되고 말았습니다.
2. 통일대박론과 드레스덴 구상
- 통일대박론의 제시:
- 2014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 통일이 되면 경제적 시너지 효과가 크게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입니다.
- 그러나 일각에서는 성급한 통일 드라이브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 드레스덴 구상 발표:
- 2014년 3월 박 대통령은 독일 드레스덴에서 남북관계 발전방안인 '드레스덴 구상'을 발표했습니다.
- 이 구상은 인도적 문제 해결, 공동 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을 골자로 했습니다.
- 그러나 북한은 제재 해제가 선행되지 않는 한 수용할 수 없다며 반발했습니다.
- 남북 이산가족 상봉 성사:
- 2014년 2월 금강산에서 3년 만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재개되었습니다.
- 10월에는 2차 상봉 행사가 진행되어, 이산가족들의 만남이 성사되었습니다.
- 그러나 이후 남북관계 경색으로 상봉 행사는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3.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한중관계 악화
-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 2015년 12월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가 도출되었습니다.
- 일본 정부의 사과와 10억 엔 출연을 골자로 한 합의는 돌발 발표로 여론의 반발을 샀습니다.
- 위안부 소녀상 설치 갈등:
- 2016년 12월 한국의 시민단체가 부산 일본영사관 인근에 위안부 소녀상을 설치하자, 일본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 주한 일본대사를 일시 귀국시키고 통화스와프 중단, 경제보복을 시사하는 등 한일관계가 경색되었습니다.
- 사드 배치와 한중관계 악화:
- 2016년 7월 한미 양국이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합의하자 중국이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 중국은 한국 연예인 활동 제한, 한국행 단체 관광 금지 등의 보복조치를 취했습니다.
- 이에 따라 경제, 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한중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었습니다.
4. 세월호 참사와 국정 리더십 실종 논란
- 세월호 참사 발생과 구조 실패:
- 2014년 4월 전남 진도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 304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한 이 사고는 안전불감증과 관피아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 대통령의 부재와 국정 리더십 논란:
- 사고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이 '7시간 부재' 논란을 낳았습니다.
- 국가 지도자로서 위기 대응 리더십이 부족했다는 비판 여론이 비등했습니다.
- 유가족 문제제기와 사회갈등 심화:
- 세월호 유가족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농성과 시위를 벌였습니다.
- 정부 대응 미흡에 대한 공분이 결집되면서, 보수-진보 진영 간 대립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 안전사회 구축 노력과 한계:
- 정부는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국민안전처 신설, 해경청 해체 등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 그러나 관련 제도 개선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정부의 진상규명 노력도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5.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대통령 탄핵
- 최순실 게이트의 발생:
- 2016년 9월 최순실씨의 국정 개입 의혹이 보도되면서 사태가 불거졌습니다.
- 최씨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사전 열람하고 인사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 국정농단 의혹과 대규모 촛불집회:
- 미르·K스포츠 재단 강제모금, 정유라 특혜 의혹 등 권력형 비리가 잇따라 밝혀지면서 사태가 확산되었습니다.
- 전국적으로 최순실 국정농단 규탄과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 탄핵소추안 가결과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
- 2016년 12월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습니다.
-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탄핵 인용 결정을 내렸고,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습니다.
- 조기 대선과 정권 교체:
-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따라 5월 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어 정권이 교체되었고, 보수에서 진보로 정권이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 간 신뢰 구축을 토대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려 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임기를 마쳤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북한의 잇단 도발로 좌초되었고, 개성공단 전면 중단으로 남북교류의 상징마저 무너졌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한일 갈등, 사드 배치에 따른 한중 마찰 등 외교적 시련이 이어졌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세월호 참사 대처 미숙으로 국정 리더십에 타격을 입었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급기야 탄핵에 이르렀습니다. 보수 정권 9년의 폐해가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였다 하겠습니다.
최순실 게이트는 헌정사상 첫 대통령 탄핵으로 귀결되었고, 광장의 촛불민심은 정권교체의 동력이 되었습니다. 국민의 준엄한 심판 속에 막을 내린 박근혜 정부는 '잃어버린 5년'의 대명사로 기억될 것입니다. 적폐의 청산과 국가 대개혁의 요구는 차기 정부에 던져진 시대적 과제로 남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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