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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기 한반도의 분단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OPYEB 2024.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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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기 한반도의 분단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1.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한반도 분할 점령

- 카이로 회담과 얄타 회담의 결과:
  -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연합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 종식 후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습니다.
  - 1945년 얄타 회담에서는 한반도를 소련과 미국이 분할 점령하는 방안이 제안되었습니다.
- 광복과 한반도의 분할:
  -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면서 한국은 35년간의 일제 식민지배에서 해방되었습니다.
  - 그러나 한반도는 38선을 기준으로 소련군(북)과 미군(남)의 분할 점령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 미군정의 실시:
  - 1945년 9월 미군이 진주하면서 3년간의 미군정기가 시작되었습니다.
  - 미군정은 일제 잔재 청산, 토지개혁 등의 조치를 시행했으나 좌우 대립을 완화하는 데는 한계를 보였습니다.



2.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을 둘러싼 갈등

- 모스크바 3상회의와 신탁통치안:
  -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미영소 3국은 한국에 대한 최대 5년간의 신탁통치를 결정했습니다.
  - 이는 한국에서 좌우익 모두의 반발을 샀고, 통일정부 수립을 둘러싼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 좌우 대립의 격화:
  - 남한에서는 친일파 처벌, 토지개혁 등을 둘러싸고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격화되었습니다.
  - 1946년 9월에는 좌익 세력의 총파업이 일어나는 등 정국이 극도로 불안해졌습니다.
- 유엔 감시하 남북한 총선거 결렬:
  - 1947년 유엔총회는 유엔 감시하에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의했습니다.
  - 그러나 소련의 반대로 북한에서는 선거가 무산되었고, 남한에서만 총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3.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한국전쟁

- 제헌국회 구성과 제헌헌법 공포:
  - 1948년 5월 10일 유엔 감시하에 남한만의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국회가 구성되었습니다.
  - 제헌국회는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을 공포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 정부 수립과 이승만 대통령 취임:
  - 1948년 7월 20일 국회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공포하고, 8월 15일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 같은 날 북한에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이 선포되어 한반도의 분단이 고착화되었습니다.
- 한국전쟁의 발발:
  -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기습 남침을 감행하여 한국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 개전 초기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던 한국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전세를 역전시켰으나, 중공군 개입으로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졌습니다.
- 휴전 협정 체결:
  - 1951년 7월부터 판문점에서 휴전회담이 시작되었습니다.
  - 2년간의 협상 끝에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어 전쟁은 종료되었으나, 평화협정은 체결되지 않은 채 남북 분단은 지속되었습니다.



4. 이승만 정부의 재건과 부정선거

- 전후 복구사업 추진:
  - 전쟁으로 폐허가 된 산업시설, 교통·통신망 등의 복구사업이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 이승만 정부는 미국의 경제원조를 바탕으로 각종 부흥사업을 전개했습니다.
- 사사오입 개헌과 종신집권 기도:
  - 1954년 11월 이승만은 국회의원 정수의 2/3를 찬성으로 규정한 개헌안(사사오입 개헌)을 강행처리했습니다.
  - 개헌으로 대통령 중임제한이 철폐되어 이승만의 장기집권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 1960년 3월 15일 치러진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정부는 대대적인 부정을 자행했습니다.
  - 이에 반발한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4·19혁명으로 발전했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습니다.



5. 장면 내각의 수립과 5·16 군사정변

- 허정 과도정부와 장면 내각 출범:
  - 이승만 하야 후 허정 과도정부가 출범했고, 내각제 개헌과 총선을 통해 장면을 국무총리로 하는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 장면 내각은 부패 척결, 경제개발 등 각종 개혁정책을 추진했습니다.
- 5·16 군사정변의 발발:
  -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을 위시한 군부 세력이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 군사정부는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고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설치하여 통치했습니다.
- 군사정부에 의한 제3공화국 출범:
  - 1963년 12월 군사정부 출신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제3공화국이 출범했습니다.
  - 이로써 한국의 현대정치는 이승만의 제1공화국, 장면의 제2공화국에 이어 박정희의 제3공화국으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원점이라 할 대한민국 정부수립은 식민지배와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민족의 염원을 담아 이뤄낸 쾌거였습니다. 그러나 이념 대립과 정치적 혼란, 권력욕에 사로잡힌 지도자들로 인해 공고한 민주공화국으로 발전하지는 못했습니다.
분단과 전쟁의 상흔, 독재와 민주화 투쟁의 악순환이 교차하는 우리의 현대사는 한 편의 파란만장한 드라마와도 같습니다. 정부수립 이래 격동의 한국사는 비극과 영웅, 좌절과 희망이 교차하는 우리 민족사의 축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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