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이스라엘 분쟁과 중동 평화 과정
1. 아랍-이스라엘 분쟁의 배경과 원인
- 시온주의와 아랍 민족주의의 충돌:
- 19세기 말 유대인들의 민족자결과 독립국가 건설을 추구한 시온주의 운동이 팔레스타인으로의 유대인 이주를 촉진했습니다.
- 이에 맞서 아랍인들은 민족해방과 독립을 위한 아랍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유대인 이주에 반발했습니다.
- 영국의 모순적 정책:
-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후세인-맥마흔 약속을 통해 전후 아랍의 독립을 약속하는 한편, 벨푸어 선언으로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 건설을 지지하는 모순된 입장을 취했습니다.
- 전후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영국의 위임통치는 아랍-유대 갈등을 더욱 첨예화시켰습니다.
-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의 배경과 결과:
-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에 상정하면서,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 유대인은 이를 수용한 반면, 아랍인들은 강력히 반발했고 이는 이스라엘 건국 직후 제1차 중동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2. 중동 전쟁의 전개와 결과
- 제1차 중동전쟁(1948):
- 1948년 5월 이스라엘 건국 선언 직후 주변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 전쟁 결과 이스라엘군의 승리로 종결되었고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 수에즈 전쟁(1956):
- 나세르 대통령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반발한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공격했습니다.
- 전쟁 중 미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영국 등은 철수했고, 유엔 평화유지군이 주둔하게 되었습니다.
- 제3차 중동전쟁(1967):
- 1967년 6월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6일 만에 종결되어 '6일 전쟁'으로 불립니다.
-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 골란고원 등 주변 아랍 영토를 점령하였습니다.
- 제4차 중동전쟁(1973):
- 1973년 10월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에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 전쟁은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종결되었으나, 아랍의 석유수출 금지로 세계 경제위기가 초래되었습니다.
- 레바논 내전과 이스라엘의 개입:
- 1975년 레바논 내전이 발발하자 시리아와 이스라엘이 내전에 개입하였습니다.
- 1978년과 1982년 이스라엘은 남부 레바논을 침공하였고, 2000년까지 남부지역을 점령하였습니다.
3. 중동 평화 프로세스의 전개
-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42호:
- 1967년 6일 전쟁 이후 채택된 결의안으로,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와 주변국의 이스라엘 승인을 주요 내용으로 합니다.
- 이후 중동 평화협상의 기본 지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 캠프 데이비드 협정(1978):
- 카터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과 이스라엘 베긴 총리가 참여한 협상입니다.
- 협정으로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에서 철수했고, 양국은 수교하였습니다.
- 마드리드 평화회담(1991):
- 걸프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주선으로 개최된 회담으로, 중동 분쟁 당사국 모두가 참석하였습니다.
- 회담은 성과없이 끝났으나, 양자간, 다자간 협상기구 구성에 합의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 오슬로 협정(1993):
- 199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비밀협상이 개최되어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 PLO의 이스라엘 승인, 가자와 예리코에서의 자치 인정,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 등이 주요 내용입니다.
- 와이 리버 회담(1998):
-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와 팔레스타인 아라파트 의장이 참여한 회담입니다.
- 회담에서 이스라엘의 예리코 철수, 헤브론 자치 확대 등이 합의되었습니다.
4. 평화 프로세스의 좌절과 새로운 도전
- 제2차 인티파다의 발발(2000):
- 2000년 9월 샤론 이스라엘 야당 지도자의 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 방문을 계기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대규모 봉기가 발생했습니다.
- 이는 평화 프로세스에 결정적 타격을 주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무력충돌로 확산되었습니다.
- 분리장벽 건설과 정착촌 확대:
- 2002년 이스라엘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분리장벽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 장벽 건설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생활이 제약받고 불법 정착촌 확대가 가속화되면서 갈등이 고조되었습니다.
- 하마스의 gaza 지배와 내전:
- 2006년 팔레스타인 의회선거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국제사회는 하마스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습니다.
- 2007년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무력으로 축출하고 실효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 가자 전쟁과 공습:
- 2008년과 2014년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로켓 공격에 대응하여 대규모 공습을 단행했습니다.
- 이로 인해 다수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고, 팔레스타인 피해가 집중되었습니다.
5. 트럼프 정부의 중동 정책과 아브라함 협정
- 예루살렘 수도 인정과 대사관 이전: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12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고, 2018년 5월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했습니다.
- 이는 팔레스타인 등 아랍권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했고, 중동 평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 시리아 골란고원 주권 인정:
- 2019년 트럼프 행정부는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병합을 공식 승인했습니다.
- 이는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되었고, 아랍권의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 아브라함 협정 체결:
- 2020년 UAE,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에 합의하고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 협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수단, 모로코로 확산되었으나,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는 기여하지 못했습니다.
아랍-이스라엘 분쟁은 중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건국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첨예한 대립은 수 차례 전면전으로 비화되었고, 역내외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해법 마련이 쉽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들어 중동 평화 프로세스가 시작되었고 PLO와 이스라엘의 상호 인정,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 등의 성과도 있었지만, 후속 협상의 난항과 제2차 인티파다의 발발로 좌초되기도 했습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예루살렘 문제 등으로 중동 갈등이 더욱 악화되는 조짐도 보입니다.
그럼에도 평화로운 중동을 향한 노력은 국제사회의 중요한 책무로 남아있습니다. 분쟁 당사자들의 진정성 있는 대화와 양보, 역내 국가들의 건설적 역할, 해법 모색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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