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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건국과 통치 질서 확립

OPYEB 2024.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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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건국과 통치 질서 확립


1. 이성계와 위화도 회군

- 권문세족의 횡포와 정치적 혼란:
  - 고려 말기에는 권문세족이 정권을 장악하고 부정부패를 일삼았습니다.
  - 특히 이른바 '악산군'으로 불리는 이인임, 이성계, 남은 등의 무인 세력이 날뛰면서 정국 혼란이 가중되었습니다.
  - 이 시기 명나라에 대한 사대 정책을 둘러싸고 親明派와 反明派 간에 심각한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 위화도 회군의 전개:
  - 1388년 이성계와 정도전 등은 요동정벌을 명목으로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으나, 돌연 군사를 돌려 개성으로 향했습니다.
  - 이것이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을 폐위시키고 정권을 장악한 군사 쿠데타였습니다.
  - 위화도 회군의 명분은 요동정벌이 명과의 관계를 악화시킨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이성계 일파가 권력 장악을 위해 군사력을 동원한 사건이었습니다.
- 공양왕 폐위와 이성계의 군사 정변:
  - 위화도 회군 후 이성계 세력은 우왕을 폐위하고 창왕을 옹립했습니다.
  - 그러나 권력의 실세는 이성계였고, 창왕은 곧 공양왕으로 격하되었습니다.
  - 결국 1392년 이성계는 공양왕마저 폐위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조선을 건국했습니다.



2. 정도전의 개혁 정책과 과전법 시행

- 정도전의 역할과 개혁안 제시:
  - 정도전은 신진사대부 출신으로, 이성계 정권의 최고 이념가이자 설계자였습니다.
  - 그는 고려 말의 폐단을 극복하고 새로운 국가 체제를 구상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 불교 억제, 유교 진흥, 권문세족 견제 등을 골자로 하는 개혁안을 제시했는데, 이는 조선 건국의 청사진이 되었습니다.
- 《조선경국전》의 반포:
  - 정도전은 1394년 《조선경국전》을 편찬하여 통치 규범을 마련했습니다.
  - 《경국대전》은 통치자의 자질, 관료 선발, 군사·형벌 제도 등 국가 운영 전반을 망라한 법전이었습니다.
  - 유교적 명분론과 민본 이념에 입각해 왕도정치의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조선 건국의 이념적 지표가 되었습니다.
- 과전법 제정과 수조권 재편:
  - 정도전은 1391년 과전법을 제정하여 관리들에게 수조지를 지급하는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 과전법 하에서는 1결의 토지를 4~6명의 농민에게 분배하고, 1/4~1/3의 수조권을 관리에게 주었습니다.
  - 과전법은 왕에게 토지 지배권을 집중시킴으로써 국가 수입을 늘리고, 관료 체제의 안정을 꾀한 조치였습니다.
  - 나아가 권문세족의 경제 기반을 약화시키는 효과도 거두었습니다.



3. 태종의 왕권 강화 정책

- 사병 혁파와 6진 개편:
  - 태종은 즉위 후 왕권 강화에 주력했는데, 무엇보다 사병 혁파가 시급했습니다.
  - 사병은 고려 말 무신들이 사적으로 거느리던 군사로, 국왕 통제 밖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 태종은 사병을 혁파하고 직속 군대인 6진을 개편하여 국왕 친위 부대로 삼았습니다.
  - 이를 통해 무신 세력을 억제하고 왕권을 뒷받침하는 군사력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 6조 직계제 실시:
  - 태종은 1401년 이방원의 건의를 받아들여 6조 직계제를 시행했습니다.
  - 6조 직계제는 의정부 6조의 장관이 차례로 국왕을 알현하는 제도로, 국왕과 신하의 거리를 좁히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 이는 신하들을 견제하고 국왕이 정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왕권 강화에 기여했습니다.  
- 경복궁과 종묘의 건립:
  - 태종은 한양에 경복궁을 건립하고 종묘를 설치하여 왕실의 권위를 높였습니다.
  - 경복궁은 왕이 거처하는 정궁으로, 웅장한 규모와 단아한 조형미로 왕실의 위엄을 과시했습니다.
  - 종묘는 역대 왕들의 신주를 모시는 왕실 사당으로, 국가 제사를 통해 왕실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4. 세종의 통치 체제 정비

- 집현전 설치와 학문 진흥책:
  - 세종은 경복궁에 집현전을 두어 학문 연구를 주도하고 인재를 육성하는 기구로 삼았습니다.
  - 집현전 학자들은 경서 해석, 역사 편찬, 의학, 천문역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성과를 내었습니다.
  - 집현전은 조선 초기 학문을 발전시키는 구심점이 되었으며, 세종 시대 문예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 또한 4서 편찬, 직전법 실시 등 유교적 교육을 강화하는 정책도 시행되었습니다.
- 《경국대전》 완성과 통치 규범 정립:
  - 세종은 《경국대전》을 증보하는 사업에 힘썼습니다.
  - 《경국대전》은 조선 태종 때부터 편찬이 시작되어, 1485년 성종 때 완성되었습니다.  
  - 《경국대전》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국가 운영의 근간이 되는 法制들이 총망라되었습니다.
  - 《경국대전》은 통치자의 규범이자 백성의 삶의 준거로서, 조선 시대 내내 준수되었습니다.
- 훈민정음 창제와 민본 정신:
  - 세종은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우리말을 표기하는 독자적 문자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 한자와 달리 배우기 쉬운 훈민정음은 백성들의 문자 생활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 세종은 직접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을 지어, 문자 보급을 통해 백성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민본적 뜻을 밝혔습니다.



5. 성종의 유교 정치 완성

- 경국대전 반포와 통치 질서 확립:
  - 성종은 1471년 《경국대전》의 편찬을 마무리 짓고 반포를 단행했습니다.
  - 《경국대전》의 완비로 통치 규범과 법적 기틀이 확고히 다져졌습니다.
  - 성종은 《경국대전》에 입각해 엄정한 법 집행과 기강 확립을 도모했습니다.
- 홍문관 설치와 유교 정치 강화:
  - 성종은 예조와 병렬을 이루는 홍문관을 설치했습니다.
  - 홍문관은 경연을 주관하고 시정을 논의하며 왕에게 간언하는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 홍문관은 3사의 한 축으로서 유교적 관료 정치를 뒷받침하는 핵심 기구가 되었습니다.
- 현량과 실시와 사림 등용:
  - 성종은 1476년 현량과를 처음 실시하여 유교적 학식과 덕망을 갖춘 인재 선발에 힘썼습니다.
  - 현량과는 초시-복시-전시-식년시로 이어지는 과거제의 정비로, 사림들에게 관로를 열어주었습니다.
  - 사림파 관료들은 《경국대전》 준수와 언관 활성화 등을 주장하며, 유교적 관료 정치의 정착을 이끌어갔습니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왕도정치의 이상을 설계하고 유교적 통치 질서를 확립해 가는 데 주력했습니다. 정도전의 개혁안과 《조선경국전》은 조선의 설계도였고, 과전법으로 대표되는 토지제도 정비는 통치 기반을 공고히 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태종, 세종으로 이어지는 왕권 강화 시기에는 《경국대전》의 편찬, 훈민정음의 창제 등으로 조선 고유의 통치 규범과 문화적 정체성이 확립되었습니다. 세조의 계유정난을 거치며 왕권이 더욱 강화되기도 했지요.
성종 때 《경국대전》이 완비되고 홍문관, 현량과 등의 제도가 정착되면서, 조선은 성리학적 관료정치의 전형을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붕당정치의 토대가 되기도 했지만, 조선 유교정치의 정수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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