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스 (蔣介石, Chiang Kai-shek, 1887-1975) - 중화민국을 이끈 국민당 지도자, 대만으로 정부를 옮겨 중화민국의 명맥을 유지한 정치적 생존의 아이콘 장제스는 청나라 말기에 태어나 중국의 근대화와 국민혁명을 이끈 정치 지도자이다. 중화민국의 총통이자 국민당의 최고 지도자로서 대륙 시기와 대만 시기를 아우르며 중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은 중국 근대사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1. 군인이 되다
- 1887년 저장성 펑화현의 염상 집안에서 출생
-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1906년 군에 입대해 일본 사관학교 유학
- 중국 동맹회 가입해 혁명 활동, 1911년 신해혁명 때는 저장성 군의 지휘관으로 활약
- 1917년 쑨원을 만나 국민당에 가담하면서 정치 입문
- 국민당 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당의 군사력을 장악하기 시작
- 황포군관학교 교장으로 독일식 사관학교 교육 실시, 국민혁명군의 핵심 양성
2. 북벌을 통한 중국 통일의 꿈
- 1926년 국민혁명군 총사령관이 되어 북벌 개시
- 쑨원의 유지를 받들어 타도군벌, 청산열강, 균전토지의 삼민주의 실현에 나서
- 1928년 6월 베이징 무혈입성으로 북벌 완수, 중국 대륙 명목상 통일 달성
- 난징 국민정부 수립 이후 장제스의 일당독재와 갈등 심화
- 1927년 4월 상하이 쿠데타로 공산당 탄압, 국공합작 결렬
- 1931년 중앙평의회에서 총통에 선출, 장제스 1인 지배체제 확립
- 1934년 둥촨 사건으로 후난성 지방 실력자들 제거, 중앙집권 강화
- 내부 반발과 지방군벌의 도전, 일본의 위협으로 국민정부 위기 직면
3. 항일전쟁과 제2차 국공합작
- 1936년 시안사건으로 장제스가 억류되고 항일민족통일전선에 합의
- 중일전쟁 발발로 국공이 제휴해 항전
- 1938년 우한에서 임시수도 꾸려 중국 정부의 정통성 과시
- 미국과 영국의 지원으로 일본에 대한 지구전 수행
- 러살의 중재로 1945년 중국 전역의 항복조인식 주재, 중국의 최고 지도자로 부상
- 국공 간 이념 대립과 불신 속 제2차 국공내전 발발
- 동북 접수를 둘러싼 국공 간 무력충돌로 전면전 양상으로 비화
- 국민당의 부정부패와 인플레이션으로 민심 이반
-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전략적 실책 거듭하고 패배
4. 대만으로의 철수와 중화민국의 재건
- 1949년 패색이 짙어지자 장제스는 대만으로 철수 결정
- 12월 타이베이에서 총통직 재취임, 중화민국의 계승을 선포
- 대만을 반공의 보루로 삼아 중국 대륙 수복의 기치 내걸어
- 미국의 군사 및 경제 원조 등에 기대 대만의 체제 정비에 주력
- 토지개혁과 경제개발로 대만의 압축 성장 토대 마련
- 1949년 토지개혁 단행으로 지주 계급 해체, 자작농 육성
- 수입대체 공업화로 노동집약 경공업 발전
- 1960-70년대 수출지향 공업화로 중화학 공업 발전, 경제 고도성장 시현
- 중화민국 고수와 장징궈 세습
- 장제스는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고수하며 중공과 대치
-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유엔 대표권 획득으로 중화민국의 고립 심화
- 1972년 미중 데탕트 이후 외교 기반이 약화됨에도 반공노선 견지
- 1975년 사망 후 부인 쑹메이링의 짧은 대행기를 거쳐 아들 장징궈가 총통 세습
5. 장제스 시대의 명암과 유산
- 중국 근대화의 기수에서 분단의 책임자로
- 북벌로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근대 국민국가의 토대를 마련
- 그러나 공산당에 대한 불신과 군사력에 의존한 통치로 내전을 초래
- 대만으로 쫓겨가 중국을 영구분단의 길로 내모는 결과 초래
- 대만의 경제기적과 민주화의 씨앗
- 철권통치 속에서도 토지개혁과 수출주도 경제정책으로 경제발전의 틀 구축
- 교육 진흥과 사회 안정화 정책으로 대만의 중산층 성장에 기여
- 장징궈 집권기 당외 인사 등용과 계엄령 해제로 점진적 민주화의 길 틔워
- 장제스의 정치적 유산과 후대 평가
- 중국 근대사의 격동기를 관통한 거대한 족적, 시대의 인물로 평가
- 민족주의와 권위주의, 반공주의를 체화한 정치 스타일은 호불호 극명
- 대륙에서는 부패와 무능, 국공내전의 책임자로 부정적 평가
- 대만에서는 이념의 차이를 떠나 국부(國父)로 존경받아
장제스는 중국 근현대사의 한 축을 담당한 걸출한 정치 지도자였다. 그의 정치적 행보는 시대의 격류에 휩싸여 수많은 우여곡절과 부침을 겪었지만, 혁명가이자 군인이라는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했다. 특유의 권위주의적 카리스마로 국민당을 장악하고 대만에서 재기에 성공한 것은 탁월한 생존 능력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다만 타협 없는 반공 노선에 경도되어 중국 분단의 비극을 초래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치적 신념과 야망에 사로잡혀 역사적 한계를 보였던 것이다. 대만의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토대를 놓은 점은 장제스가 남긴 긍정적 유산이다. 지금의 대만이 있기까지 장제스 시기의 안정화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그러나 그 또한 쑹메이링과 장징궈 등 후계자들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거인이었지만 비극적 영웅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인물, 장제스. 그의 복잡다단한 삶은 20세기 동아시아사의 명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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