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드골 (Charles André Joseph Marie de Gaulle, 1890-1970) - 프랑스 제5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치인 샤를 드골은 프랑스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망명정부인 자유 프랑스군을 이끌며 민족 영웅으로 떠올랐다. 전후에는 제4공화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현행 제5공화국을 세우는 등 근대 프랑스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었다.
1. 가톨릭 가정에서 애국심과 군인의 꿈을 키우다
- 1890년 11월 22일, 북부 릴 교외의 크루아에 위치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다
- 아버지 앙리 드골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애국심과 반독 감정을 품다
- 릴의 예수회 학교와 파리 생시르 군사학교에서 수학하며 엘리트 장교의 꿈을 키우다
- 1912년 생시르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육군 장교로 임관하다
2. 제1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용맹을 떨치다
-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드골 중위는 전선에 투입되어 맹활약하다
- 베르덩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독일군에 포로로 잡혀가 32개월간 수용소 생활을 하다
- 세 차례 탈출을 시도했으나 좌절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용소에 남아 병사들을 독려하다
- 드골은 독일이라는 숙적에 맞서 조국을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굳건히 하다
3. 군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을 모색하다
- 제1차 대전 종전 후 프랑스 육군에 남아 mechanized forces의 중요성을 역설하다
- 전쟁성 장관 레이노의 초청으로 국방위원회에서 프랑스군 현대화 방안을 제안하다
- 1937년, 장군으로 진급한 드골은 기동전 개념을 골자로 하는 '대군지도' 이론서를 출간하다
- 1940년 5월, 레이노 내각의 국방부 차관에 임명되어 본격적으로 정계에 발을 들이다
4. 자유 프랑스의 지도자로 나서다
- 독일의 침공으로 프랑스가 무너지자 드골은 영국으로 망명해 망명정부 수립을 선언하다
- BBC 방송을 통해 프랑스 국민들에게 저항을 호소하며 자유 프랑스군 결성을 촉구하다
- 연합군의 일원으로 프랑스 해방을 위해 북아프리카, 시리아 등지에서 전투를 지휘하다
- 1944년 6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과 함께 프랑스로 귀국해 파리 해방을 이끌다
- 전후 과도정부의 수반을 맡아 질서 회복과 경제 재건에 진력하다
5. 제4공화국의 위기와 드골의 귀환
- 1946년 1월 드골은 헌법 제정 과정의 난맥상을 비판하며 정계에서 물러나다
- 제4공화국의 정치적 혼란과 불안정 속에서 드골의 카리스마는 더욱 빛을 발하다
- 1958년 5월, 알제리 사태로 위기에 처한 제4공화국은 드골을 총리로 불러들이다
- 드골은 제5공화국 헌법을 기초하여 대통령 중심제를 도입하고 강력한 국정 운영 체제를 수립하다
- 1958년 12월 대통령에 선출된 드골은 알제리 문제 해결과 경제 발전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다
6. 드골리즘의 전성기와 위기
- 내각 총리에 미셸 드브레를 임명하고 드골 체제의 기반을 닦아가다
- 알제리 독립을 승인하고 아프리카 식민지 정리에 착수하는 등 탈식민지화를 표방하다
- 경제정책: 국가주도 산업화로 고도성장 달성, 프랑화폐 안정화 성공
- 외교정책: NATO 군사조직 탈퇴, 독자 핵무장 추진으로 반미 독자노선 견지
- 학생과 노동자의 대규모 시위인 68혁명에 직면해 위기를 맞지만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위기를 모면하다
- 1969년 지역개혁 및 상원개혁 국민투표 부결로 사임하고 정계를 은퇴하다
7. 드골의 정치적 유산
- 제5공화국 체제의 창건으로 오늘날까지 프랑스 정치의 근간을 이루다
- 유럽통합에 제동을 걸면서도 獨佛 협력으로 유럽 내 주도권 확보
- 민족주의와 자주외교 기치 아래 미국과 소련 양 초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
- 전후 프랑스 경제의 고도성장과 복지국가의 토대를 닦아놓아
- 드골리즘은 이후 시라크, 샤르코지 등 우파 정권의 정신적 지주로 작용
결론적으로 샤를 드골은 현대 프랑스를 있게 한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암흑기에 구국의 영웅으로 나섰던 그는 전후 프랑스를 재건하고 공화국을 세우는 등 국가 지도자로서 불멸의 업적을 남겼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확고한 국가관으로 무장했던 드골 특유의 리더십은 '드골리즘'이라는 정치철학으로도 승화되었다. 그의 정책은 때로 권위주의로 흐르기도 했지만, 독립과 자주의 가치를 좇았던 그의 발자취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영감을 주고 있다. 질서와 안정, 부강한 조국을 향한 드골의 불타는 열정. 그것이 바로 프랑스 현대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정치인 샤를 드골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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