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 1889-1945) - 나치 독일의 총통이자 독재자. 인종주의와 극단적 민족주의를 내세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쟁 범죄자.

OPYEB 2025. 1. 2.
반응형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 1889-1945) - 나치 독일의 총통이자 독재자. 인종주의와 극단적 민족주의를 내세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쟁 범죄자.

1. 오스트리아에서의 불우한 청소년기

- 린츠에서의 유년 시절:
    - 1889년 4월 20일,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국경 인근의 작은 도시 브라우나우 암 인에서 태어났다.
    - 세관원이었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는 권위적이고 학대적인 인물로, 어린 히틀러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 어머니 클라라 푈츨은 너그럽고 자애로운 성품으로 히틀러에게 유일한 정서적 안식처였다.
    - 1900년대 초반 히틀러 가족은 오스트리아 린츠로 이주하여 정착한다.
- 미술학교 진학의 좌절:
    - 린츠의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히틀러는 미술에 재능과 관심을 보였다.
    - 그러나 엄격한 아버지는 히틀러를 공무원으로 만들기를 원해 갈등을 빚었다.
    - 결국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히틀러는 비엔나로 가 미술 아카데미 입학을 시도한다.
    - 1907년과 1908년, 두 차례에 걸친 시험에서 모두 낙방하면서 화가의 꿈은 좌절되고 만다.
- 떠돌이 생활과 반유대주의의 萌芽:
    - 미술학교 진학에 실패한 히틀러는 1909년부터 거리의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 그는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빈민층 생활을 전전하며, 사회에 대한 불만과 증오심을 키워갔다.
    - 당시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던 빈민층 유대인들을 향해 반감을 품기 시작했다.
    -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팜플렛과 민족주의 신문 등에 심취하며 반유대주의 사상을 굳혀갔다.

2. 제1차 세계대전 참전과 나치당으로의 입문

- 1차 대전 참전과 병사로서의 활약상:
    -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히틀러는 독일군에 자원입대하여 서부전선에 투입되었다.
    - 그는 용맹하게 싸웠고, 부상당한 전우들을 구하는 등 모범을 보여 철십자훈장을 수여받았다.
    - 전쟁 말기 히틀러는 독가스 공격으로 실명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이를 이겨내고 복귀했다.
    - 패전 직후 히틀러는 전쟁의 패인을 유대인들과 공산주의자들의 배신 탓으로 돌리는 '배후의 적' 이론에 경도되었다.
- 독일 노동자당 입당과 나치당으로의 발전:
    - 1919년 9월, 히틀러는 독일 노동자당(DAP)에 입당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한다.
    - 뛰어난 연설 실력으로 두각을 나타낸 그는 당 선전부장으로 抜擢되었다.
    - 1920년, 히틀러는 당명을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SDAP), 즉 나치당으로 개칭하고 당수가 된다.
    - 나치당은 반유대주의, 反마르크스주의, 독일의 영토 확장을 주장하며 세를 불려갔다.
- 폭동 시도와 투옥, 『나의 투쟁』 집필:
    - 1923년 11월, 히틀러는 민족주의 세력과 함께 뮌헨 폭동(일명 맥주홀 폭동)을 일으켰다.
    - 그러나 폭동은 실패로 돌아갔고, 히틀러는 반역죄로 체포되어 5년형을 선고받았다.
    - 복역 중이던 1925-26년, 히틀러는 자서전이자 정치 선언인 『나의 투쟁』(Mein Kampf)을 집필한다.
    - 출소 후 히틀러는 점차 폭력 대신 합법적인 정치 운동 노선을 택하게 된다.

3. 권력 장악과 나치 체제의 수립

- 경제 공황과 나치당의 약진:
    - 1930년대 초 대공황의 여파로 독일 경제가 붕괴 직전에 이르자, 나치당은 서민층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 1932년 대선에서 히틀러는 준우승을 차지했고, 나치당은 제1당으로 부상했다.
    -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정국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1933년 1월 30일, 히틀러를 首相으로 임명한다.
    - 이로써 히틀러는 권력을 장악할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 독재 체제의 구축과 나치 이데올로기 관철:
    - 수상이 된 히틀러는 국회 해산,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독재 권력을 구축해나갔다.
    - 반대파에 대한 탄압이 자행되었고, 언론, 교육, 문화 전반에 나치 이데올로기가 침투했다.
    - 1934년 힌덴부르크 사망 후, 히틀러는 총통의 자리에 오르면서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
    - 전체주의 국가 체제 아래 나치당은 국가와 일체화되었고, 개인은 국가에 예속되었다.
- 경제 재건과 재군비:
    - 히틀러 정권은 대규모 公共事業과 군수산업 육성을 통해 경제를 회복시켜 나갔다.
    - 실업률은 크게 감소했고, 히틀러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 상승했다.
    - 그러나 이는 결국 전쟁을 위한 경제, 군수경제로 귀결되고 말았다.
    -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을 정면으로 위반하며 군비 증강과 징병제를 실시했다.

4.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유대인 학살

- 오스트리아 병합과 치외법권적 팽창주의:
    - 1938년 3월, 히틀러는 고국 오스트리아를 무력으로 병합하는 데 성공한다.
    - 이어 체코슬로바키아 수데텐란트 지역 합병을 요구하며 서구 열강을 위협했다.
    - 1939년 8월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폴란드 침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 결국 폴란드 침공을 계기로 영국, 프랑스가 대독선전포고를 하면서 2차 대전이 본격화되었다.
- 전쟁 초기 승전과 백인 우월주의의 극단화:
    - 1940년 5월, 독일군은 불과 6주 만에 프랑스를 항복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 이어 발칸 반도와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도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히틀러의 위세는 절정에 달했다.
    - 전쟁 초기의 승리로 독일인들의 우월감은 극에 달했고, 유대인과 슬라브족에 대한 멸시는 더욱 심화되었다.
    - 소련 전역에서 독일군에 의한 残虐行爲가 자행되었고, 강제 수용소가 속속 세워졌다.
- 유대인 대학살과 아우슈비츠:
    - 1942년 1월 베를린 근교 반제 회의에서 히틀러 정권은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 즉 유대인 절멸 계획을 수립한다.
    - 이에 따라 독일이 점령한 전 유럽에서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학살당했다.
    -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만 11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 나치의 반인륜적 대량학살은 20세기 최대의 비극이자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 행위로 기록되고 있다.

5. 패망과 자살

- 동부 전선에서의 패배:
    - 1941년 6월 소련을 침공한 히틀러는 초기 전과에 도취해 모스크바 점령을 예단했다.
    - 그러나 레닌그라드 공방전과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은 궤멸적 피해를 입었다.
    - 동부 전선 패배로 독일군은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고, 히틀러의 건강도 급속히 악화되었다.
    - 결국 1945년 4월 말, 소련군에 의해 베를린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 총통 지하벙커에서의 자살:
    - 소련군의 베를린 진격이 눈앞에 다가오자, 히틀러는 총통 관저 지하벙커로 피신했다.
    - 그는 베를린 사수를 독려하는 한편, 독극물 실험과 유서 작성에 몰두했다.
    - 1945년 4월 29일, 히틀러는 오랜 연인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린다.
    - 4월 30일, 두 사람은 직접 총을 겨누고 자살했으며, 시신은 측근들에 의해 불태워졌다.
-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과 비극적 유산:
    - 2차 대전 종전 후 연합국은 독일의 주요 전범들을 처벌하기 위해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을 열었다.
    - 재판 결과 주요 나치 전범 12명이 사형 판결을 받고 처형되었다.
    - 인종차별과 반유대주의, 독재와 군국주의로 점철된 히틀러의 나치즘은 인류 역사의 악몽으로 기록되었다.
    - 2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히틀러의 전쟁은 독일은 물론 인류 전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하고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불러온 독재자 히틀러. 그는 20세기 인류가 만들어낸 최악의 악의 화신으로 평가된다. 다만 히틀러는 광기 어린 독재자인 동시에 당대의 불안과 혼란을 집약한 괴물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 인종차별의 편견이 결합된 나치즘은 오늘날에도 경계해야 할 위험한 사상으로 남아있다.

반응형

'T > H'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니토 무솔리니 (Benito Amilcare Andrea Mussolini, 1883-1945) -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운동을 이끈 독재자. '20세기의 불한당들'로 지칭되는 전체주의 지도자 중 하나.  (0) 2025.01.04
우드로 윌슨 (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 - 미국의 제28대 대통령. 제1차 세계대전 중 미국을 연합국 진영으로 이끌었으며, 전후 국제연맹 창설을 주도한 이상주의 정치인.  (0) 2025.01.03
야요이 쿠사마 (草間彌生, Kusama Yayoi, 1929-) - 전후 일본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여성 아티스트로, 그녀의 상상력과 확장성은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0) 2025.01.01
장제스 (蔣介石, Chiang Kai-shek, 1887-1975) - 중화민국을 이끈 국민당 지도자, 대만으로 정부를 옮겨 중화민국의 명맥을 유지한 정치적 생존의 아이콘 장제스는 청나라 말기에 태어나 중국의 근대화와 국민혁명을 이끈 정치 지도자이다. 중화민국의 총통이자 국민당의 최고 지도자로서 대륙 시기와 대만 시기를 아우르며 중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어낸 인물  (0) 2024.12.31
리콴유 (李光耀, Lee Kuan Yew, 1923-2015) - 현대 싱가포르의 국부이자 '아시아의 현인'으로 칭송받는 정치인 리콴유는 싱가포르 건국 총리로서 전근대적이고 빈곤했던 도시국가를 20세기 후반 최첨단 선진국으로 발돋움시킨 걸출한 지도자이다. 강력한 리더십과 역동적인 정책으로 싱가포르의 번영을 이끌었던 그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동양적 맥락에서 재해석한 실용주의의 대명사로 통한다.  (0) 2024.12.30

댓글

💲 추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