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대처 (Margaret Hilda Thatcher, 1925-2013) - '철의 여인'으로 불리며 영국 현대사를 새로 쓴 정치인 마거릿 대처는 영국의 첫 여성 총리이자 보수당을 이끌며 영국 정치의 판도를 뒤바꾼 거물 정치인이다. 과감한 신자유주의 정책 도입과 노조 개혁, 포클랜드 전쟁에서의 승리 등으로 영국의 국가 정체성을 재정립한 '철의 여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1. 영국 중산층 가정에서 정치인의 꿈을 키우다
- 1925년 10월 13일, 잉글랜드 동부의 그랜섬에서 알프레드 로버츠와 비어트리스의 둘째 딸로 태어나다
-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료품점 겸 담배가게에서 일하며 보수적이고 검소한 생활 방식을 익히다
- 그랜섬 문법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옥스퍼드 대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다
- 옥스퍼드 재학 시절 보수주의 성향의 학생조직 '보수당 협회(Conservative Association)'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다
- 1947년 학부 졸업 후 화학 연구를 이어가다 1950년대 초반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다
2. 젊은 여성 정치인으로 보수당에 입성하다
- 1950년 총선과 1951년 총선에 보수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시다
- 1952년 당시 미혼 여성으로는 이례적으로 핀츨리 지역구 후보 공천을 받아 화제가 되다
- 1959년 총선에서 핀츨리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며 하원 첫 입성에 성공하다
- 낙태법 개정, 이혼법 개정 등 여성 관련 법안 통과에 앞장서며 보수당 내 입지를 다지다
- 에드워드 히스 총리 재임 시절인 1970년 교육부 장관에 임명되어 첫 내각에 발탁되다
3. 보수당을 대표하는 여성 정치 지도자로 우뚝 서다
- 1974년 히스 총리의 사임으로 보수당 내 리더십 경쟁이 시작되자 당 대표 경선에 출사표를 던지다
- 1차 투표에서 히스의 후계자로 지목되던 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키다
- 2차 투표에서 압도적 표차로 킹을 누르고 보수당 대표에 선출되어 영국 여성으로는 최초로 제1야당 대표가 되다
- 당 대표로서 하원에서 날카로운 질의와 설득력 있는 연설로 브레넌 노동당 정부를 압박하다
- 1979년 총선에서 보수당을 압승으로 이끌고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에 취임하다
4. '철의 여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다
- 경제정책: 긴축재정과 금융 자유화로 인플레이션 잡고 영국 경제 체질 개선
- 재정 적자 해소를 위해 긴축재정을 단행하고, 세금 감면과 이자율 인상 등 통화주의 정책 실시
- 대처리즘의 핵심인 민영화 정책 추진으로 주요 공기업 매각, 민간 활력 제고
- 복지 축소와 노동시장 유연화로 실업률을 낮추고 생산성 향상 도모
- 노조 개혁: 번성하던 노조 세력 약화로 협상 주도권 장악
- 복수노조 허용으로 노조 간 경쟁 유도, 불법파업 처벌 강화로 노조활동 위축
- 1984년 광부 대규모 파업 사태 때 타협 없는 강경책으로 1년 만에 노조 굴복시켜
- 노조 개혁의 성공으로 '영국병'으로 불리던 노사분규 문제 해결
- 외교안보 정책: 영국의 국제적 위상 제고
- 친미 일변도 노선을 견지하며 레이건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 유지
-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를 격퇴하고 영토 수호, 영국인의 자긍심 고취
- 공산권 및 개도국 문제에 적극 개입, 홍콩 반환 협상 타결
- 유럽통합 정책: EC(유럽공동체) 통합 가속화에 제동
- '우리의 돈을 돌려달라'며 영국의 EC 분담금 환급 관철
- EC의 정치적 통합에 반대하며 영국의 주권 훼손 우려 제기
- 유로화 도입을 거부하고 영국의 독자노선 고수
5. 대처리즘의 명암과 정치적 유산
-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영국 경제 재건과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
- 대처 집권 전 IMF 관리 체제 직전까지 갔던 영국 경제를 구조조정하고 재도약의 계기 마련
- 민영화와 규제완화로 국영기업 비효율을 줄이고 시장경쟁 촉진
- 다만 제조업 기반 약화, 빈부격차 심화 등 대처리즘의 부작용도 상존
- 보수주의 이념의 현대화로 영국 우파의 주도권 장악
- 전통적 보수주의를 신자유주의로 재무장시켜 영국 우파 지형 개편
-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로 보수당 내 당론 통일, 집권 장기화에 성공
- 대처리즘은 이후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에도 영향을 미쳐
- 경제적 실리와 자국 우선주의로 점철된 외교 정책
- 미국과의 밀월관계로 '특별한 동맹' 과시, 반소 냉전 전선 강화
- 홍콩 주권 반환 등 제국 청산 과정을 실리적으로 매듭
- 그러나 유럽통합 저해, 아일랜드 분쟁 대응 미숙 등은 한계로 지적
- 퇴임 후에도 대처리즘을 설파하며 영국 정치에 영향력 행사
- 1992년 귀족원 입성 이후에도 연설, 회고록 등으로 보수 우파 논객으로 활동
- 존 메이저, 데이비드 캐머런 등 후계 보수당 총리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
- 서거 후에도 대처리즘은 현재진행형, 영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총리로 꼽혀
영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철의 여인' 대처. 그녀가 이룬 정치적 업적과 파급력만큼이나 대처리즘을 둘러싼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은 영국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심화된 불평등의 문제는 여전히 첨예한 쟁점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병'을 치유하고 세계 속의 영국을 부활시킨 위대한 정치 지도자였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영국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마거릿 대처. 그 이름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영국 정치의 선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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