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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 (李光耀, Lee Kuan Yew, 1923-2015) - 현대 싱가포르의 국부이자 '아시아의 현인'으로 칭송받는 정치인 리콴유는 싱가포르 건국 총리로서 전근대적이고 빈곤했던 도시국가를 20세기 후반 최첨단 선진국으로 발돋움시킨 걸출한 지도자이다. 강력한 리더십과 역동적인 정책으로 싱가포르의 번영을 이끌었던 그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동양적 맥락에서 재해석한 실용주의의 대명사로 통한다.

OPYEB 2024.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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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 (李光耀, Lee Kuan Yew, 1923-2015) - 현대 싱가포르의 국부이자 '아시아의 현인'으로 칭송받는 정치인 리콴유는 싱가포르 건국 총리로서 전근대적이고 빈곤했던 도시국가를 20세기 후반 최첨단 선진국으로 발돋움시킨 걸출한 지도자이다. 강력한 리더십과 역동적인 정책으로 싱가포르의 번영을 이끌었던 그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동양적 맥락에서 재해석한 실용주의의 대명사로 통한다.

1. 싱가포르 화인 가정에서 태어나 엘리트로 성장하다

- 1923년 9월 16일, 해남성 출신의 교사 가정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다
- 어려서부터 영어와 중국어를 함께 배우며 이중 언어 구사 능력을 쌓다
- 싱가포르 최고 명문 래플스 칼리지 진학, 영국 케임브리지대 법학과 수석 졸업
- 유학 시절 변호사 지망생으로서 웅변 대회에서 연이어 우승하는 등 두각
- 싱가포르로 돌아와 변호사로 활동하며 노동자와 화인들의 권익 옹호에 앞장

2. 사회주의자에서 실용주의 정치인으로 변모하다

- 1950년대 사회주의 노선의 인민행동당(PAP) 결성을 주도하다
- 1955년 입법의회 선거에 출마해 의원에 당선, 정계에 공식 데뷔하다
- 장래 수상을 노리던 리콴유는 공산주의자들을 제치고 점차 온건노선으로 선회
- 영국에 자치권 이양을 요구하는 동시에 말레이시아 합병을 추진하다
- 1959년 자치정부 수립 총선에서 압승, 총리에 취임하며 실용주의 국정운영 시작

3. 독립국가 건설과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다

-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으로 합병되나 불편한 동거 끝에 1965년 독립 선언
- 자원빈국의 한계 속에서 개방과 성장 드라이브 정책 본격 가동
- 경제개발청(EDB) 신설로 해외투자 적극 유치, 수출주도형 산업화에 박차
- 인종, 언어,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한 다인종 조화정책으로 사회 안정 도모
- 국민투자기금인 중앙저축기금(CPF) 도입, 주택개발청(HDB) 설립으로 주택보급 확대
- 부패 척결을 국시로 삼고 반부패위원회 설치, 공직 투명성과 효율성 제고에 매진

4. '아시아적 가치'를 표방한 개발독재의 딜레마

- 공산주의 세력과 언론 통제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에서 벗어난 강성 통치
- 정적들을 고소와 구금으로 제압하고 언론사 폐간 등 권위주의 통치 일삼아
- 아시아적 맥락에서 민주주의를 재해석한 '아시아적 가치론' 내세워 비판 무마
- 지속적인 고도 경제성장이 정당성의 바탕이 되었으나 인권 탄압의 명분으로 악용되기도
- 국제사회의 민주화 요구에도 불구, 안정과 성장을 우선하는 독재 체제 고수

5. 총리직 은퇴 후에도 싱가포르 정치 대부로 존재감 과시

- 1990년 총리직에서 물러나 고문직인 내각 선임장관으로 남아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 행사
- 아들 리셴룽이 총리에 오른 후에도 국정 현안과 외교 분야에서 조언자 역할 지속
- 집권여당 인민행동당의 정신적 지주로서 당 지도부에 막후 영향력 행사해
-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덩샤오핑에게 싱가포르식 발전모델을 제안하는 등 조언자로 나서
- 아시아 국가들의 자강 노력과 아세안 역내 협력을 강조하며 지역통합 비전 제시
- 911 테러 이후 회교 과격주의에 대한 경계론을 폄으로써 아시아 지도자들의 공감대 형성

6. 작고 이후에도 싱가포르의 국부로 추앙받다

- 2015년 3월 23일, 91세를 일기로 폐렴 합병증으로 별세
- 사흘간의 국장 기간 동안 싱가포르 국민들의 자발적인 조문 행렬 이어져
- 전 세계 지도자들의 추모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며 '아시아의 현인'으로 회고되어
- 싱가포르 발전을 몸소 체현한 지도자로서 새로운 국가모델의 창시자로 평가
- 다만 권위주의적 통치와 집안 세습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
- 리콴유의 정치적 유훈은 '국민과 함께 꿈꾸고 만들어 가는 위대한 싱가포르'로 요약

리콴유가 남긴 정치적 유산의 핵심은 '실용'과 '성장'이라는 두 축으로 집약할 수 있다. 그는 좌우 이념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실사구시의 국익 우선주의를 구현했고, 이를 바탕으로 싱가포르의 눈부신 경제발전을 견인해냈다. 서구식 민주주의를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는 유교 전통의 정치 질서에 입각해 '아시아적 가치'를 짜깁기했던 그의 정치관은 여전히 논쟁거리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덕분에 싱가포르가 정치적 혼란 없이 고도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있다. 한편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는 신흥공업국의 모델이 되고 아세안 지역통합의 비전을 제시했던 리콴유의 역할은, 그가 단순히 싱가포르라는 도시국가의 지도자를 넘어 20세기 아시아 전체의 명운을 바꾼 거인이었음을 웅변해준다. "인민을 위해 인민과 함께" 싱가포르의 독립과 번영의 시대를 연 리콴유. 그의 헌신과 통찰은 싱가포르인들은 물론 전 세계가 기억해야 할 정치적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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