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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한 아바스 왕조 시기의 이슬람 문명 (8세기 ~ 13세기)

OPYEB 2024.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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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한 아바스 왕조 시기의 이슬람 문명 (8세기 ~ 13세기)


1. 아바스 왕조의 등장과 바그다드의 건설

-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아바스 왕조는 이슬람 제국의 중심을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서 이라크의 바그다드로 옮겼습니다.
- 762년 칼리프 만수르에 의해 띠그리스강 중류에 건설된 바그다드는 왕조의 수도이자 이슬람 세계 최대의 도시로 발돋움했죠.
-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바그다드는 원형의 구조를 하고 있었는데, 성벽으로 둘러싸인 내부에는 칼리프의 궁전과 모스크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 바그다드는 곧 세계 각지에서 상인과 학자,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국제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인도와 중국을 잇는 동서무역의 중심지였던 것이죠.
- 10세기 중엽 인구 1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번창했던 바그다드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대도시였다고 합니다. 이슬람 황금기를 구가하던 아바스 왕조의 부흥을 상징하는 존재였죠.



2. 아바스 시대 문화의 융성과 학문의 발달

- 우마이야 시대 다마스쿠스에 버금가는 문화의 중심지로 발돋움한 바그다드는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를 열었습니다.
- 바그다드에는 칼리프의 주도로 바이트 알힉마(지혜의 집)가 설립되었는데, 이곳에서는 고대 그리스어 문헌의 번역과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아랍어로 옮겨지면서 이슬람 지성계에 스며들었고, 이는 아비센나 등 뛰어난 철학자를 배출하는 토대가 되었죠.
- 수학에서는 알 콰리즈미가 대수학을 집대성했고, 페르시아 수학자 알 카시는 소수 계산법을 발전시켰습니다.
- 의학에서는 페르시아 출신의 라자스가 『의학 대전』을 저술했고, 안과 의사 이븐 알하이삼은 광학 이론을 정립했습니다.
- 문예에서는 10세기의 시인 무탄누비가 아랍어로 서정시를 꽃피웠고, 페르시아어로는 11세기 피르도시의 서사시 『왕들의 書』가 탄생했습니다.
- 바그다드의 문화적 융성은 아바스 시대 칼리프들의 학문 장려 정책에 힘입은 바 컸습니다. 과학과 예술을 보호하고 후원하는 계몽적 군주들의 역할이 돋보였던 시기였죠.



3. 왕조 쇠퇴기의 혼란과 몽골의 바그다드 점령

- 10세기 이후 아바스 왕조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투르크계 병사집단인 맘룩이 실권을 장악하면서 칼리프는 형식적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죠.
- 1055년에는 셀주크 튀르크가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술탄이 칼리프를 대신해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술탄-칼리프 체제가 확립됩니다.
- 술탄과 칼리프의 이중적 통치 구조는 오스만 제국 시기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정치적 혼란과 내분의 소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 1258년에는 훌라구 칸이 이끄는 몽골군이 바그다드를 침공해 대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아바스 왕조는 멸망하고 500년 역사의 막을 내렸죠.
- 바그다드 함락은 이슬람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칼리프가 처형되고 바그다드가 초토화되자 이슬람의 정치적 중심은 이집트의 맘루크조로 넘어가게 됩니다.



4. 바그다드 중심 이슬람 문명의 영향과 유산

-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꽃핀 아바스 왕조의 이슬람 문명은 학문과 예술의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리스 철학의 수용과 자연과학의 발달은 중세 유럽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죠.
-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주석을 단 이븐 루슈드를 위시한 아랍 철학자들의 저술은 중세 스콜라 철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아베로에스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이븐 루슈드의 주석서들은 라틴어로 번역되어 아퀴나스 등 기독교 신학자들에게 읽혔습니다.
- 『천일야화』로 유명한 중세 문학작품들은 바그다드 문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었고, 아라베스크 문양 등 이슬람 예술 양식도 르네상스 미술에 일정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 『질 다리 수학서』를 집필한 알 콰리즈미는 유럽에 아라비아 숫자를 전한 인물로 유명한데, algebra(대수)라는 용어 자체가 그의 책 제목 '알 자브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 안과의사 이븐 알하이삼의 광학 이론은 중세 유럽에 전해져 광학 발전의 토대가 되었고, 라자스와 아비센나의 의학서 또한 유럽 의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 바그다드 출신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가 제작한 세계지도는 당대 최고 수준을 자랑했는데, 이는 『로저 2세의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서유럽에 전해져 지리학 발달에 기여했습니다.  




중세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를 연 아바스 왕조 시대, 바그다드로 대표되는 학문과 예술의 번영은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문화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국제도시로 번성했던 바그다드는 동서 문명 교류의 중심이자 이슬람 지성사의 메카로 기능했습니다.
'지혜의 집'으로 불린 바이트 알힉마와 같은 교육·연구 기관이 설립되어 활발히 운영된 것은 아바스 시대 문화 발전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군주들의 경쟁적인 학술·예술 후원 속에 수학과 천문학, 의학, 지리학 등 자연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했고, 문학 또한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을 수용하고 주석하는 작업은 당대 이슬람 지식인들에게 단순한 모방이 아닌 비판적 계승의 작업이었습니다. 서구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난 최근 연구 성과들은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독창적 심화에 이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물론 아바스 왕조의 문명사적 성취가 내적 모순이나 한계를 면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군주 후원에 의존한 학술 활동은 정치권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고, 특정 학파에 경도된 석학주의는 자유로운 사유의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중앙집권화된 전제정 아래서는 지방의 민족문화가 억압되거나 주변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후 셀주크 튀르크의 진출로 터키문화가 이슬람 문명의 주류로 부상한 데서도 잘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꽃핀 아바스 시대 문명의 성취는 인류 정신사에 빛나는 한 페이지로 남아있습니다. 서구 중세를 암흑으로 규정하는 진부한 이분법을 넘어, 당대 이슬람 세계가 보여준 문화적 빛살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습니다.  
특히 유럽 문명과의 접점이라는 관점에서 바그다드 중심의 이슬람 문명은 각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스페인 코르도바 등지에서 꽃핀 후기 이슬람 문명이 남유럽으로 전파되면서, 르네상스의 문화적 촉매제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문명의 우열을 따지기에 앞서 보편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인류 유산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그다드에서 꽃핀 지적 열정과 관용의 전통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되살려야 할 값진 자산이 아닐까요. 동서 문명의 소통과 융합이 요청되는 지금, 아바스 시대의 개방성은 여전히 되새길 만한 반면교사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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