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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 (Rabindranath Tagore, 1861-1941) - 인도 벵골 지방의 시인이자 작가이자 사상가, 그리고 교육자

OPYEB 2024.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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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 (Rabindranath Tagore, 1861-1941) - 인도 벵골 지방의 시인이자 작가이자 사상가, 그리고 교육자


1. 벵골 지역의 명문 타고르 가문 출신

- 예술과 사상의 가문:
    - 타고르는 1861년 5월 7일 인도 벵골의 캘커타에서 태어났습니다.
    - 그의 아버지 데벤드러나트 타고르는 저명한 종교철학자이자 '브라모 사마지' 운동의 지도자였습니다.
    - 또한 타고르 가문은 대대로 예술과 학문을 숭상해 온 명문 가문으로, 수많은 문인과 철학자, 개혁가를 배출했습니다.
- 어린 시절의 문학적 재능:
    - 타고르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詩作)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 8세 때 이미 한 편의 시를 써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 유년기 타고르는 시와 음악, 연극 등 예술 전반에 대한 교양을 쌓으며 성장했습니다.


2. 벵골 르네상스의 선구자

- 방대한 문학작품 남겨:
    - 타고르는 일생 동안 시, 소설, 단편, 희곡, 수필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방대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기탄잘리』, 소설 『고라』, 자전적 소설 『지바나스므리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 벵골어로 주로 작품 활동을 했던 그는 벵골 문학의 황금기를 연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 인본주의 사상 고취:
    - 타고르의 작품들은 인간애와 생명존중, 자연에 대한 사랑 등 휴머니즘 사상이 짙게 배어있습니다.
    - 그는 카스트제도와 여성차별, 영국 지배에 저항하며 평등과 자유의 메시지를 전파했습니다.
    - 특히 『지탄잘리』(1910)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인도 문학을 세계에 알린 공로는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3. 교육개혁가로서의 활동

- 비슈바 바라티 대학 설립:
    - 1901년 타고르는 서벵골의 볼푸르에 '산티니케탄'이라는 실험학교를 세웁니다.
    - 그는 영국식 주입식 교육을 배격하고 인격도야와 예술교육을 강조하는 교육철학을 내세웠습니다.
    - 이 학교는 1921년 '세계대학(Visva-Bharati)'으로 발전하며 국제적 교육의 전당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 시크샤 사트라(교육론)의 집대성:
    - 평생 타고르는 교육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쏟으며 교육이론을 집대성합니다.
    - 『시크샤 사트라』에서 그는 아동 중심, 자연 친화적 교육을 주창하며 교육개혁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 예술을 통한 창의성 계발, 세계시민의식 고취 등 오늘날에도 되새길 만한 혜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 평화주의자로서의 삶

- 동서 문명의 조화 추구:
    - 타고르는 젊은 시절 영국에서 수학하며 서구문명을 접하게 됩니다.
    - 이후 그는 인도의 전통과 정신을 서양에 소개하는 데 힘썼고, 반대로 서구의 장점을 인도에 전하고자 힘썼습니다.
    - "동서양이 서로 만나 인류 보편의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습니다.
- 민족주의 비판과 평화사상:
    - 20세기 초 타고르는 세계 평화의 위기를 예견하며 민족주의의 폐해를 경고했습니다.
    - '민족이기주의는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메시지로 당대 지성계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 제1차 세계대전 와중에 발표한 연설집 『민족주의』(1917)은 평화주의 사상의 고전으로 꼽힙니다.
    - '동서 문명교류의 서막을 열고 평화의 물꼬를 튼 국제주의자' 이것이 타고르가 후대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타고르는 인도와 범 아시아의 저항과 부활을 노래한 시성(詩聖)이었습니다. 제국주의의 억압 아래 신음하던 한 민족의 영혼을 그는 언어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벵골의 대지와 민중의 삶을 노래하며 피지배 민족의 존엄성을 일깨운 시인. 타고르를 아시아 민족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육에 대한 타고르의 사명감 또한 높이 살 만합니다. 그가 꿈꾼 교육은 학생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 삶을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인격을 닦고 예술로 창의력을 계발하며 평등과 공경의 장을 열어가는 것. 산티니케탄의 교육 실험은 식민지 시대 교육의 새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1913년 노벨상 수상은 타고르에게 '동방의 현자'라는 세계적 명성을 안겨주었습니다. 동서 문명의 가교 역할을 자임한 그는 평생 인류 보편의 진리를 모색했습니다. 민족의 경계를 넘어 인류애를 노래하고 서로의 장점을 교류하자 했던 것이죠. 이 같은 세계시민의식은 양차 세계대전을 겪은 오늘날에도 되새길 만한 가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시와 교육, 철학으로 일관한 타고르의 삶은 동서양을 넘나든 하나의 편력이었다 할 만합니다. 벵골 민족의 영혼을 일깨워 세계의 지성과 교감한 시성이자 스승. 민족주의의 편협함을 넘어 '만인은 한 형제'라 노래한 세계시민. 오늘날 우리는 타고르의 삶에서 보편과 특수, 전통과 진보의 조화로운 화음을 듣게 됩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인 타고르의 염원은 여전한 과제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평화롭게 교감하는 것,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오직 그 길뿐"이라는 메시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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