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클로저 운동의 배경과 전개
- 농업 혁명과 인클로저의 확산:
- 18세기 영국에서는 농업 혁명이 진행되면서 농업 생산력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 지주들은 토지 효율을 높이고 영리적 농업을 추구하기 위해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 인클로저는 종래의 OpenField 제도를 해체하고 토지를 울타리로 둘러싸는 것을 의미합니다.
- 의회 인클로저법의 제정:
- 인클로저의 초기에는 개별 지주들 간의 계약을 통해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그러나 18세기 중반 이후에는 의회 인클로저법의 제정을 통해 강제적이고 포괄적인 방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 1750년에서 1810년 사이에 약 2,500건의 인클로저법이 통과되었고, 경작지의 약 1/4이 인클로저되었습니다.
- 자영농의 몰락과 농촌 사회의 변화:
- 인클로저는 소규모 자영농과 농업노동자들의 공유지 이용권을 박탈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 이들은 울타리 친 토지에서 쫓겨나 임금노동자로 전락하거나 도시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는 해체되고 지주와 소작인, 임노동자로 계층화되는 변화를 겪었습니다.
2. 산업혁명의 발생과 전개
- 기술혁신과 면방직 공업의 발달:
- 18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일련의 획기적인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면서 산업혁명의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 1764년 하그리브스의 물레(Spinning Jenny), 1769년 아크라이트의 방적기 발명 등으로 면방적 공업이 획기적으로 발달했습니다.
- 이는 공장제 기계공업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 철강 및 철도 산업의 성장:
- 1784년 콜트의 증기기관 개량, 1825년 스티븐슨의 철도 개통 등은 중공업의 발달을 가져왔습니다.
- 철강 산업은 제련·제강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급성장했고,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철도망의 확충은 원료와 상품의 대량수송을 가능케 함으로써 공업화를 더욱 촉진했습니다.
- 자본주의 경제체제로의 이행:
- 산업혁명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을 의미했습니다.
- 자유로운 임금노동자, 기계에 기반한 공장제 대생산, 자본의 지배가 경제의 중심축으로 부상했습니다.
- 시장을 둘러싼 자유경쟁이 본격화되고 자본가 계급이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3. 산업혁명이 가져온 사회경제적 변화
- 도시화와 노동자 계급의 형성:
- 산업혁명은 공업도시의 팽창과 도시화를 초래했습니다. 맨체스터, 리버풀 등이 새로운 공업도시로 부상했습니다.
-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농촌 이주민들은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공장노동자로 전락했습니다.
-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 계급(프롤레타리아)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 자본가 계급의 성장과 혁명적 부르주아지:
- 상공업 분야에서 막대한 자본을 축적한 자본가 계급(부르주아지)이 경제적 지배력을 장악했습니다.
- 이들은 지주 중심의 봉건적 구질서에 도전하는 혁명세력으로서 역사 발전을 추동했습니다.
- 프랑스혁명, 영국의 선거법 개정운동 등 시민혁명의 주체세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 빈부격차 심화와 사회문제의 대두:
-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빈부격차가 심화되었습니다.
- 열악한 노동조건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불만이 고조되었습니다.
- 아동노동, 장시간 노동 등 비인간적 노동현실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4. 영국의 산업화가 세계경제에 미친 영향
- 자유무역 제국주의의 정책적 뒷받침:
- 영국의 자본가 계급은 자국 상품의 판로 확보를 위해 자유무역을 적극 옹호했습니다.
- 곡물법 폐지(1846), 항해법 폐지(1849) 등을 통해 보호무역주의를 폐기하고 자유무역 제국주의로 전환했습니다.
- 영국은 비교우위에 입각해 공업국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해 나갔습니다.
- 세계시장의 재편과 식민지 확대:
- 영국은 자국 상품의 공세적 수출을 통해 세계시장을 재편하고자 했습니다.
- 백인 정착민 식민지에서는 원료를 수입하고 공산품을 판매하는 본격적 교역이 이루어졌습니다.
- 아시아·아프리카에서는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며 식민제국을 확장해 갔습니다. 인도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 '영국병'과 후발 국가들의 반응:
- 대영제국의 압도적 공업력으로 인해 후발 국가들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 자국 산업의 존립이 위협받자 미국, 독일 등에서는 보호관세를 통해 자국 시장을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 또한 후발 국가들은 영국의 산업화 방식을 모델로 삼아 급속한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게 됩니다.
5. 결론
18-19세기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과 산업혁명은 근대사회로의 이행을 알리는 거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봉건적 토지소유관계를 해체하고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의 토대를 놓았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큽니다.
인클로저 운동은 전근대적 농업구조에 결별을 고하고 농업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크게 제고했습니다. 자본주의적 임대차 관계의 발전, 상품작물 재배의 활성화 등으로 농업 혁명을 이끌었습니다.
이는 한편으로 전통적 농촌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소농민층의 몰락을 초래하여 엄청난 사회적 고통을 수반했습니다. 토지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하거나 도시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죠. 농촌문제와 도시빈민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한편 산업혁명은 기계제 공장을 기반으로 한 획기적 기술혁신과 생산력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방직·방적 공업에서 비롯된 혁신의 물결은 철강·철도·조선 등 중공업으로 빠르게 전파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물적 토대가 구축되고, 급속한 공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었습니다. 자본가 계급이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부상하고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확립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산업혁명은 또한 전근대적 생산관계의 급격한 해체에 따른 엄청난 진통을 수반했습니다. 영세 수공업자들의 몰락, 장시간·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 계급의 형성, 도시 슬럼가의 확대 등이 뼈아픈 사회적 대가로 나타났습니다.
영국발 산업혁명은 자유무역 제국주의 정책과 맞물리며 전 세계로 파급되어 갔습니다. 방직·방적 제품을 중심으로 막대한 상품 수출이 이루어지고, 세계시장이 재편되었습니다. 영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하며 식민제국을 확대해 갔습니다.
근대 세계경제 질서의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영국의 산업혁명은 세계사적 분수령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자본주의 세계경제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인클로저 운동과 산업혁명의 역사적 경험은 기술과 생산력의 발전이 초래하는 양면성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물질적 풍요와 이면의 소외와 빈곤, 환경 파괴와 자원 착취 등 오늘날 자본주의가 직면한 딜레마의 근원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급격한 기술변화가 가져올 사회경제적 충격과 인간소외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18-19세기 영국 사례가 주는 교훈이 결코 적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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