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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플레밍 (Alexander Fleming, 1881-1955) - 스코틀랜드 출신의 미생물학자, 약리학자

OPYEB 2024.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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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플레밍 (Alexander Fleming, 1881-1955) - 스코틀랜드 출신의 미생물학자, 약리학자


1. 스코틀랜드에서의 성장기

-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다:
    - 플레밍은 1881년 8월 6일 스코틀랜드 에이르셔주의 로흐필드 농장에서 태어났습니다.
    - 아버지 휴는 양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었고, 어머니 그레이스는 자상한 주부였습니다.
    - 플레밍은 7남매 중 3번째로, 어린 시절 가족들의 농사일을 거들며 검소하게 자랐습니다.
- 세인트 메리 의과대학 입학:
    - 1901년 플레밍은 런던의 세인트 메리 의과대학에 입학합니다.
    - 그의 형 톰이 의대 등록금을 대주면서 의학도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 의대 시절 플레밍은 폴로, 수영 등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2. 의학 연구자로서의 출발

- 올머로드 라이트의 제자가 되다:
    - 1906년 플레밍은 세인트 메리 부속병원에서 외과의사 올머로드 라이트를 만납니다.
    - 라이트는 면역학 분야의 선구자로, 젊은 플레밍에게 연구자의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 이듬해 플레밍은 라이트의 연구팀에 합류해 본격적인 의학 연구의 길로 들어섭니다.
- 제1차 세계대전과 전상 감염 연구:
    -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플레밍은 육군 중위로 자원입대합니다.
    - 서부전선에서 그는 열악한 참호 속 부상병들의 세균 감염으로 인한 참상을 목격하게 됩니다.
    - 전쟁 경험은 세균 감염을 극복할 새로운 치료제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3. 페니실린의 발견

- 곰팡이의 기적:
    - 1928년 9월, 플레밍은 연구실에서 우연히 곰팡이가 핀 페트리 접시를 발견합니다.
    - 곰팡이 주변으로 포도상구균 군락이 사라진 것을 본 플레밍은 곰팡이의 항균 효과를 직감합니다.
    - 곰팡이에서 추출한 물질, 즉 페니실린이 세균을 죽이는 항생물질임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 연구의 난관에 부딪히다:
    - 그러나 페니실린을 대량 추출하고 정제하는 기술은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 게다가 페니실린은 체내에서 쉽게 분해되어 약효가 오래가지 않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 플레밍은 페니실린의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으며 한동안 연구를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 옥스퍼드 그룹의 기여:
    - 1940년대 초 옥스퍼드대 플로리, 체인 연구팀이 페니실린 대량 생산법 개발에 성공합니다.
    - 이들은 미국 제약사들과 협력해 페니실린을 전시 군용 의약품으로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 1945년 플레밍, 플로리, 체인은 페니실린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하게 됩니다.


4. 명성과 노년

- 세계적 명성:
    - 페니실린의 발견으로 플레밍은 세계 최고의 과학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 1944년 플레밍은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고, 각국 대학들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 전후 플레밍의 연구실은 전 세계 젊은 미생물학도들의 메카로 떠올랐습니다.
- 노년의 삶:
    - 1948년 플레밍은 세인트 메리 병원 미생물학과 교수직에서 은퇴합니다.
    - 은퇴 후에도 그는 페니실린 재단 활동, 세계 각국 강연 등으로 바쁜 노년을 보냈습니다.
    - 1955년 3월 11일 플레밍은 심장마비로 런던 자택에서 숨을 거둡니다. 향년 73세였습니다.
- 플레밍의 유산:
    - 페니실린은 폐렴, 수막염, 매독 등 무서운 감염병들을 퇴치하는 특효약이 되었습니다.
    - 오늘날 페니실린으로 대표되는 항생제는 의학의 혁명이자 인류의 축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 플레밍은 우연한 발견을 의학사의 금자탑으로 만든 호기심과 직관의 천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플레밍은 우연과 필연이 빚어낸 의학의 혁명가였습니다. 곰팡이가 남긴 페트리 접시의 이상한 흔적에서 세기의 발견을 이끌어낸 직관. 그것이야말로 탁월한 과학자의 자질이 아니겠습니까. 플레밍의 연구실에서 시작된 페니실린 혁명은 이후 의학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페니실린이 구해낸 수많은 생명을 생각하면 그의 공로를 아무리 칭송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한편 학계의 냉대와 제약회사들의 외면 속에서도 묵묵히 연구에 매진했던 플레밍의 자세 또한 되새길 만합니다. 거창한 이론보다는 작은 곰팡이에 천착했던 겸손한 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남긴 최고의 유산은 아마도 호기심과 관찰력으로 무장한 그 지칠 줄 모르는 열정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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