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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항로 개척과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화 (15-18세기)

OPYEB 2024.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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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항로 개척의 배경과 의의


- 지리상의 발견과 항해술의 발달:
    - 15세기 르네상스 시기, 고대 그리스·로마의 지리지식이 재발견되고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가 널리 알려지면서 대항해 시대의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 나침반, 항해도, 삼각범 등 항해술의 발달로 먼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기술적 조건도 갖추어졌죠.
    - 당시 지리상의 발견은 구대륙에 대한 인식을 혁신하고 신항로 개척에 대한 의욕을 고취했습니다.
- 레콘키스타 완수와 해외팽창:
    - 이베리아반도에서는 700여 년에 걸친 레콘키스타(국토회복운동)가 1492년 그라나다 함락으로 완수되었습니다. 
    -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재정복 過程에서 얻은 해양 진출의 경험과 열정을 신대륙 개척으로 돌렸죠.
    -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신항로 개척에 박차를 가하고, 아메리카 탐험과 정복에 나섰습니다. 
- 동방 무역을 위한 새로운 항로 모색:
    - 지중해 무역을 둘러싼 이탈리아와 이슬람 상인들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동방 교역로 확보를 위한 대안 모색이 시급해졌습니다.
    - 귀중한 향신료, 비단, 보석 등 동방 사치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새로운 무역로 개척에 대한 욕구도 커졌죠. 
    -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 그리고 서쪽으로 항해해 동인도제도에 이르는 루트에 도전장이 던져졌습니다.

 



2. 포르투갈의 신항로 개척


- 엔리케 왕자와 아프리카 탐험:
    -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는 아프리카 연안 탐험을 주도하며 항해 기술 발전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 그의 주도로 사가레스 곶에 항해학교가 세워지고 선박 건조와 항해술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죠.
    - 1434년 지중해를 벗어나 아프리카 북서부 해안 탐사에 나섰고, 1445년 세네갈 연안에 이르렀습니다.
-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희망봉을 발견하다:
    - 인도항로 개척을 위해 아프리카 대륙을 일주하고자 했던 포르투갈의 노력은 1488년 디아스의 희망봉 발견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 그는 대서양을 따라 아프리카 남단에 이르렀고, 인도양 항로의 가능성을 열어젖혔죠.
    - 비록 폭풍과 선원들의 반발로 되돌아와야 했지만, 그의 위업은 가마 원정대의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 바스쿠 다 가마, 인도에 상륙하다:
    - 1497년 바스쿠 다 가마는 인도를 향한 대항해에 나섰습니다.  
    - 그해 11월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에 진입, 이듬해 5월 인도 캘리컷에 도착했죠.
    - 향신료를 구매하고 인도 통치자와 통상조약을 체결한 그는 동방과의 직접교역 시대를 열었습니다.

 



3.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아메리카 탐험


- 콜럼버스의 항해와 신대륙 도달: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건너 서쪽으로 향하면 동인도제도에 이를 수 있으리라 확신했습니다.
    - 에스파냐 여왕 이사벨라의 후원으로 1492년 8월 대항해에 나선 그는 그해 10월 12일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했죠.
    - 그러나 그것이 기대했던 동인도제도가 아닌 신대륙이었음을 깨닫지 못한 채 카리브해 제도를 탐험했습니다.
- 아메리고 베스푸치, 신대륙의 발견을 알리다:
    -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에도 신대륙이 아시아가 아닌 새로운 대륙이라는 인식은 널리 공유되지 않았습니다.
    - 1497년과 1504년 두 차례 남아메리카 탐험에 나선 베스푸치는 그곳이 아시아와는 다른 새로운 땅이라고 주장했죠.
    - 그의 항해기가 유럽에 소개되면서 비로소 제4의 대륙 아메리카의 존재가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 마젤란의 세계일주와 태평양 횡단:
    - 포르투갈의 항해사 마젤란은 서쪽으로 항해하여 동인도제도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 그는 1519년 에스파냐 국왕의 지원을 받아 5척의 배를 이끌고 서남항로 개척에 나섰죠.
    - 남아메리카 남단을 돌아 태평양을 횡단, 동인도제도에 도착했으나 원주민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했고, 그의 부하 델 카노가 최초의 세계일주를 완수하게 됩니다.

 



4. 에스파냐의 아메리카 정복과 식민 체제


- 아스테카 제국과 잉카 제국의 정복:
    - 에스파냐는 신대륙 발견 이후 아메리카 대륙 정복에 본격 착수했습니다.
    -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는 멕시코 원주민 국가인 아스테카 제국을 정복하고,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함락시켰죠.
    - 1532년에는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안데스 문명을 꽃피운 잉카 제국을 무너뜨리고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을 약탈해갔습니다. 
- 식민지 경영과 원주민의 저항:
    - 에스파냐는 아메리카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해 부왕을 파견하고 엔코미엔다 제도를 실시했습니다.
    - 원주민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하여 광산과 대농장에서 혹사했죠. 유럽에서 건너온 천연두 등 각종 질병으로 원주민 인구가 급감하자 아프리카에서 대량의 흑인 노예를 끌어왔습니다.
    - 에스파냐의 야만적 식민 통치에 맞서 원주민들의 저항이 곳곳에서 일어났지만 대부분 무자비하게 진압되었습니다.
- 에스파냐 함대와 은의 유입:
    - 아메리카 식민지의 막대한 부는 에스파냐로 집중되었습니다. 포토시 은광 등지에서 생산된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이 아메리카 왕실의 재정을 윤택하게 했죠.
    - 스페인 함대는 신대륙의 귀금속을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해 무장 선단을 구성해 운항했습니다.
    - 아메리카산 은의 대량유입은 유럽 경제를 활성화한 동시에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양면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론


신항로 개척과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화는 유럽 열강의 해외팽창이 본격화된 대항해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중세 말 지중해 무역 체제의 한계에 봉착한 서유럽 국가들은 희망찬 미래를 대양 건너에서 찾고자 했죠. 나침반을 든 항해사들은 미지의 바다로 나아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인류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대륙을 발견함으로써 인류 문명의 지평을 확장시켰습니다.
그러나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주도한 신대륙 정복은 토착 문명의 유린과 원주민 말살이라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1492년은 유럽인에게는 新天地의 발견으로 歡呼할 사건이었겠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悲運의 시작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16세기 이래 수백 년간 신대륙에서 자행된 제국주의 열강의 착취와 수탈은 오늘날 라틴아메리카가 안고 있는 정치·경제적 고난의 원죄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신항로 개척의 긍정적 의미와 함께, 그것이 안겨준 비극과 아픔의 역사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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