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절대왕정의 시대적 배경
- 봉건제 쇠퇴와 중앙집권화 경향:
- 16-18세기 유럽에서는 봉건적 영주들의 권력이 약화되고 국왕 중심의 중앙집권화가 진전되었습니다.
- 봉건제의 지역 분권적 질서에서 벗어나 국가 단위의 통합이 이루어진 것이죠.
- 교회의 권위 약화, 화폐 경제의 발달, 신항로 개척에 따른 상업 혁명 등이 중앙집권화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했습니다.
- 종교개혁의 영향과 내전의 극복:
- 16세기의 종교개혁은 가톨릭 교회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국왕의 정치적 자율성을 신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30년 전쟁, 위그노 전쟁 등 종교 내전을 거치며 국가 권력의 정당성과 독점력에 대한 합의가 형성되었죠.
- '국왕 즉 국가'라는 개념 아래 절대왕정의 이념적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 관료제와 상비군의 발전:
- 중세의 봉신 관계를 대신해 직업 관료제가 발달하면서 국왕의 의지를 관철하는 행정력이 강화되었습니다.
- 상비군 체제의 도입으로 국왕은 강력한 군사력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죠.
- 이는 영토 통합과 대외전쟁 수행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했습니다.
2. 주요 절대군주국가의 사례
- 에스파냐 합스부르크 왕조의 절대왕정:
- 에스파냐는 카를로스 1세와 펠리페 2세 치하에서 가톨릭 절대왕정 체제를 확립했습니다.
- 아메리카 식민지 경영을 통해 유입된 막대한 부는 국왕의 절대권력을 뒷받침했죠.
- 에스파냐 함대, 테르시오스 연대로 무장한 에스파냐는 유럽 최강의 군사대국으로 군림했습니다.
- 튜더왕조와 스튜어트 왕조의 잉글랜드:
- 잉글랜드는 15세기 장미전쟁을 거치며 왕권이 약화되었으나, 튜더 왕조의 등장으로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 1534년 헨리 8세는 수장법을 제정해 영국 국교회를 창설하고 교회의 수장이 되었죠.
- 이후 엘리자베스 1세 시기의 절대왕정 체제는 명예혁명을 거치며 입헌군주정으로 이행하게 됩니다.
- 루이 14세의 프랑스 절대왕정:
- 프랑스의 절대왕정은 루이 14세 때 절정에 달합니다. "나는 곧 국가다"라는 그의 말은 절대주의를 상징하는 문구로 유명하죠.
- 루이 14세는 궁정을 베르사유로 옮기고 화려한 궁정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왕당파와 親政신을 앞세운 집권 체제는 프랑스 절대왕정의 정수였습니다.
- 중상주의 정책, 대외 팽창전쟁을 통해 '태양왕'으로 군림했지만 말년의 계속된 전쟁으로 국력이 소진되었습니다.
- 프로이센의 계몽절대주의:
- 17세기 후반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의 대제독은 프로이센 왕국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 ' 병영국가'로 불리던 프로이센은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와 상비군 육성으로 급성장했죠.
- 특히 프리드리히 2세는 '계몽군주'를 자임하며 덕망과 실력을 겸비한 이상적 절대군주상을 제시했습니다.
3. 절대왕정의 정치사상적 기반
- 군주의 신권에 기초한 절대주의 이념:
- 16세기 장 보댕 등에 의해 체계화된 절대주의 이념은 왕권신수설에 토대를 두고 있었습니다.
- 군주는 신으로부터 통치권을 부여받은 대리인이며, 그 권력은 절대적이고 무제한하다는 것이죠.
- 절대주의 사상은 군주 중심의 일원적 국가질서를 옹호하며 봉건적 혼란을 수습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왕권강화론:
- 17세기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홉스는 절대왕정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은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보고 자연상태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절대권력이 필요함을 역설했죠.
- 사회계약을 통해 이양된 권리에 의거, 국가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군주의 권력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 보쉬에의 정치론:
- 프랑스의 사상가 보쉬에는 루이 14세 시기 절대왕정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 그의 저서 '정치론'은 왕권신수설을 전면에 내걸고 군주가 신으로부터 직접 권력을 부여받은 존재임을 강조했죠.
- 이에 따르면 백성은 절대 권력에 복종할 의무가 있고, 저항할 수 없습니다.
4. 절대왕정에 대한 도전과 한계
- 의회주의의 발달과 입헌군주정의 맹아:
- 절대왕정 아래에서도 의회의 권한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 영국에서는 의회가 국왕의 자의적 행사를 견제하며 권력을 분점해 나갔죠.
- 1689년 명예혁명 이후 권리장전이 승인되고 입헌군주정의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 시민계급의 성장과 계몽사상의 확산:
- 절대왕정 시대 상업 발달에 힘입어 부르주아 계급이 성장하며 절대주의의 한계가 노정되었습니다.
- 계몽사상가들은 전제적 왕권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시민적 자유와 권리를 요구했죠.
- 로크의 사회계약론,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론 등은 시민혁명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 프랑스혁명과 절대왕정의 몰락:
- 절대왕정의 종말은 18세기 말 프랑스혁명으로 결정타를 맞았습니다.
- 루이 16세의 처형, 공화정 수립은 구체제의 붕괴를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었죠.
- 프랑스혁명은 유럽 각국의 혁명에 불을 당기며 절대왕정 시대의 막을 내리고 근대 시민혁명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결론
절대왕정 시대는 유럽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 평가됩니다. 절대군주의 강력한 권력을 바탕으로 중앙집권 국가체제가 확립되고, 대외팽창과 상비군 육성으로 근대 민족국가로의 이행이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제적 정치체제와 특권계급의 횡포는 때로 백성에게 고통을 안겨주었고, 시민계급이 성장하며 그 한계가 노정되었죠. 18세기 계몽사상과 시민혁명을 통해 결국 절대왕정은 막을 내리고 근대 국민국가의 틀이 마련되는데, 이는 절대왕정이 역사 발전의 한 단계로서 수행한 역할과 의의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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