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나라와 당 나라 시대의 문화적 성취 (581년 ~ 907년)
1. 통일 제국의 수립과 율령 체제의 정비
- 수 문제의 통일과 군현제 실시:
- 581년, 북주의 양견이 남북조를 통일하고 수 나라를 세웠습니다.
- 문제라는 칭호를 사용한 양견은 전국에 군현제를 실시하고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확립했죠.
- 9품중정제에 따라 관료를 철저히 인사 고과하고, 3성 6부제를 통해 행정 효율성을 제고했습니다.
- 당 태종의 정복 활동과 최대 영토:
- 618년 당 왕조를 연 이연은 수의 폭정에 반발한 농민봉기 세력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 이연의 뒤를 이은 태종 이세민은 동튀르크를 복속시켜 만리장성 너머로 영토를 확장했죠.
- 정복 활동의 결과 당은 한반도와 베트남 일부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제국이 되었습니다.
- 율령 체제의 정비와 통치 이념:
- 수와 당은 율령 체제를 정비하여 왕조의 통치 규범으로 삼았습니다.
- 통일 제국 수립 후 만들어진 수 율령은 이후 당률의 토대가 되었죠.
-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고, 동중서의 천인감응설도 적극 활용하였습니다.
2. 시문학의 황금기를 연 당시(唐詩)
- 초당 시기의 음사와 산문:
- 초당 시기에는 민간 노래인 악부시가 크게 유행하였는데, 이를 음사라 부릅니다.
- 음사는 민요 풍의 친근한 시어로 송별, 연회, 사랑 등을 노래한 서정시죠.
- 공동연, 원지, 왕발 등이 뛰어난 음사 작품을 남겼고, 한유의 고문과 유종원의 골체 등 산문도 발달했습니다.
- 성당 시기 이백과 두보:
- 성당시기에는 당시(唐詩)가 절정에 이릅니다. 이백과 두보로 대표되는 시인들이 우후죽순 배출된 것이죠.
- 이백은 뛰어난 상상력과 완벽한 운률로 500여 편의 시를 남겼는데, 그의 시는 부와 자유분방함이 넘칩니다.
- 두보는 이백과 쌍벽을 이루는 대시성(大詩聖)으로, 참신한 시어로 현실의 부조리를 풍자한 사회비판시가 압권입니다.
- 중당 이후의 백거이와 소식:
- 중당 이후에는 한유의 고문 부흥 운동에 영향 받은 새로운 시풍이 등장합니다.
- 백거이는 한유의 문하생으로 율시에 뛰어났는데, "시는 뜻이 있어야 한다[詩言志]"는 시론을 내세우며 현실비판적인 작품을 남겼죠.
- 송대의 소식은 시와 사에 모두 능한 전천후 문학가였는데, 그의 관념적이고 해학적인 시풍은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3. 불교와 도교 사상의 발전
- 선종과 화엄종의 발달:
- 수나라 말에는 남북조 시대 유행하던 부파불교가 쇠퇴하고, 선종과 화엄종이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 선종을 창시한 달마는 교외별전(敎外別傳)과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장하며 참선을 통한 해탈을 강조했죠.
- 화엄종은 법장에 의해 중국화된 교학 체계를 갖추게 되는데,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보편적 진리 체계를 수립했습니다.
- 밀교와 정토종의 유행:
- 당 중기 이후에는 밀교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현세 이익을 강조한 주술·의례 중심의 불교였죠.
- 당 말에는 아미타불의 정토세계를 지향하는 정토종이 널리 퍼졌고, 미륵신앙도 유행했습니다.
- 불교 사상은 당시 지식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왕维의 시에는 선종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기도 합니다.
- 도교의 발전과 민간신앙:
- 수당 시기에는 노장사상에 기반한 도교가 크게 발전합니다.
- 수 문제는 스스로를 도교의 교주로 자처하며 도교를 국교화하려 했죠.
- 당대에는 소옹, 성현 같은 도사들이 철학적 도교사상을 심화시켰고, 장진요 등 도교 서사시도 널리 읽혔습니다.
4. 율령 체제와 문화의 동아시아 전파
- 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
- 주변국들은 수와 당의 선진 문물을 수용하면서 동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해 갔습니다.
- 일본은 수당 율령 체제를 모방한 리쓰료 체제를 운영했고, 한반도와 베트남도 한자와 유교를 수용했죠.
- 특히 일본의 경우 당의 장안성을 본떠 헤이조쿄(나라)를 건설하는 등 광범위한 문화 수용이 이뤄졌습니다.
- 불교와 유교의 동아시아적 변용:
- 선종 불교는 중국에서 크게 발달한 뒤 한반도와 일본 등지로 전파되어 독특한 불교문화를 낳았습니다.
- 신라의 승려 혜초는 인도를 순례하고 『왕오천축국전』을 남기기도 했죠.
- 당과 송의 성리학은 한반도에 건너가 주자학으로 발전하는데, 사액서원 등을 통해 관학화되기도 했습니다.
- 동아시아 문자 문화의 바탕, 한자:
- 수당 시기에 이르면 한자는 동아시아 각국 문자 생활의 기반이 됩니다.
- 월남에서는 한자를 토대로 쯔놈 문자가 만들어졌고, 일본에서는 가나가 발명되었죠.
- 한자는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소통을 가능케 한 보편 문자로서, 유교 경전과 불경을 비롯해 각종 문헌의 유통을 촉진했습니다.
수당 제국은 동아시아 전통시대의 꽃을 피운 시기였습니다. 통일제국의 수립, 율령체제의 정비는 동아시아 각국에 보편 문명의 규범을 제공했죠.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고 불교와 도교를 발전시킨 것은 동양 사상사의 큰 획을 그은 성취였습니다.
무엇보다 시와 사에서의 성과는 인류 정신사에 길이 남을 찬란한 빛을 발했다고 평가할 만합니다. 시성 이백과 두보로 대표되는 당시는 중국 문학사뿐 아니라 세계문학사를 장식하는 금자탑이 되었으니까요. 시를 통해 개인의 서정을 노래하되 사회를 꼬집는 풍자도 잊지 않았던 당시인들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되새길 만합니다.
불교와 유교, 율령과 한자로 대표되는 동아시아문명의 성과는 수당을 거치며 꽃을 피웠고 주변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물론 각국의 풍토에 맞게 변용되는 토착화 과정을 겪기도 했죠. 하지만 유교적 소양을 갖춘 관료와 불교 사찰 네트워크, 한자라는 보편 문자가 지역 질서의 근간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요컨대 수당시기는 통일제국의 위업과 더불어 문화의 百花齊放을 구가한 동아시아 문명의 황금기였습니다. 거대제국의 몰락 이후에도 한자문화권의 전통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졌습니다. 동아시아 각국이 제국주의 열강에 맞서 근대국민국가를 모색할 때도, 그 정신적 자산의 바탕에는 수당의 유산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죠.
물론 수당제국의 화려한 성취가 계급모순과 민생 문제를 감추는 면죽임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통일왕조가 남긴 전제적 관료제의 유제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동아시아인들의 정신세계를 일구는 데 수당문명이 끼친 영향력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수당의 거울이 주는 성찰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인간 보편의 염원을 고전의 울림 속에서 읽어내는 지혜. 그것이 우리가 찬란한 문명사의 유산에서 배워야 할 과제가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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