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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트로츠키 (Лев Троцкий, Leon Trotsky, 1879-1940) - 러시아 혁명의 주역이자 볼셰비키 정권 초기의 실력자. 스탈린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여 망명길에 올랐고 결국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의 손에 희생된 비운의 혁명가.

OPYEB 2025.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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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트로츠키 (Лев Троцкий, Leon Trotsky, 1879-1940) - 러시아 혁명의 주역이자 볼셰비키 정권 초기의 실력자. 스탈린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여 망명길에 올랐고 결국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의 손에 희생된 비운의 혁명가.

1. 젊은 혁명가의 광휘

- 열혈 마르크스주의자로 활동 시작:
    - 트로츠키는 1879년 11월 7일 러시아령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 니콜라예프 실과학교에 입학했으나, 1896년 혁명 동아리에 가입하며 레닌의 사상에 경도되었다.
    - 1897년 혁명 선동 혐의로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형 가던 중 탈출, 런던으로 망명한다.
    - 런던에서는 레닌을 만나 자신의 혁명론을 굳혀가기 시작했다.
- 1905년 러시아 제1차 혁명에 참여:
    - 트로츠키는 1905년 1월 피의 일요일 사건을 계기로 러시아로 잠입했다.
    - 상트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의장으로 선출되어 총파업과 무장봉기를 주도했다.
    - 그러나 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다시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 된다.
    - 1907년 탈출에 성공해 유럽과 미국, 캐나다로 망명 생활을 이어갔다.
- 2월 혁명 승리 후 귀국:
    - 1917년 페트로그라드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나자, 트로츠키는 즉각 러시아행을 결정했다.
    - 귀국한 그는 볼셰비키당에 입당하고, 레닌 없이 당을 이끌어갔다.
    - 노동자와 병사 소비에트가 조직되자 트로츠키는 이를 장악하고 반전-반전제 운동을 주도했다.
    - 4월 레닌이 귀국했을 때, 트로츠키는 이미 2인자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2. 10월 혁명의 영웅

- 10월 혁명의 최고 실력자로 활약:
    - 1917년 7월 봉기 실패 후 수감된 트로츠키는 9월 석방되어 군사혁명위 의장에 선출되었다.
    - 레닌의 지시에 따라 무장봉기를 준비하며 붉은 근위대를 배치하는 등 10월 혁명을 진두지휘했다.
    - 10월 25일 겨울궁전이 함락되고 임시정부가 붕괴하자, 소비에트 정부가 수립되었다.
    - 트로츠키는 새 정부의 외무인민위원(각료)에 임명되어 대외 관계를 총괄했다.
-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체결을 주도:
    - 소비에트 러시아는 독일과의 전쟁을 종결짓기 위해 강화 회담에 임했다.
    - 트로츠키는 전권 대표로 파견되어 협상을 주도했으나 레닌의 즉각적인 강화 지시에는 반대했다.
    - '전쟁도 없고 평화도 없다'는 입장으로 시간을 끌다 결국 독일의 최후통첩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 1918년 3월 3일 가혹한 조건의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체결되었다.
- 적군 창설과 내전에서의 활약:
    - 1918년 3월 13일 트로츠키는 군사인민위원으로 임명되어 적군 창설에 착수했다.
    - 제1차 세계대전의 포로 출신 장교들을 기용하고 병력을 대폭 확충하여 5개 전선사령부를 구성했다.
    - 내전 기간 트로츠키는 장갑열차를 타고 전선을 누비며 직접 지휘했고, 용맹한 지도력으로 명성을 얻었다.
    - 1919년 콜차크, 데니킨, 유데니치 백군을 연이어 격파하여 볼셰비키 정권을 사수했다.

3. 권력투쟁의 출발점에 서다

- 레닌과 당내 좌파의 맹주로 부상:
    - 내전 승리 후 당내에서 트로츠키의 영향력은 절정에 달했다.
    - 1920년대 초반 노동조합 논쟁, 1인 관리제 논쟁 등에서 트로츠키는 좌파의 입장을 대변했다.
    - 반면 우파를 이끈 부하린이나 중도파 스탈린 등과 대립각을 세웠다.
    - 트로츠키는 세계혁명을 내세우며 사회주의 국가들의 단결을 주장했다.
- 레닌 사후 총서기 스탈린과 각을 세우다:
    - 1922년 레닌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스탈린이 당 조직을 장악해갔다.
    - 레닌은 유언장에서 스탈린의 독선과 거친 행태를 경계하면서 트로츠키를 후계자로 내정했다.
    - 그러나 당 관료 출신인 스탈린은 사무국의 인사권을 무기로 자신의 지지 세력을 확대해갔다.
    - 이에 맞서 트로츠키는 당내 민주화를 요구하며 스탈린의 독주를 견제하고 나섰다.
- 스탈린-카메네프-지노비예프 삼두정치의 와해:
    - 1924년 레닌이 사망하자 권력의 공백기가 도래했다.
    - 스탈린은 카메네프, 지노비예프와 연합해 트로츠키를 고립시키는 전략을 폈다.
    - 이른바 삼두정치 시절, 트로츠키는 당에서 점차 소외되어 갔다.
    - 1925년 트로츠키는 군사인민위원 직에서 해임되고 당 정치국원직마저 상실했다.

4. 좌파 반대파의 대변자

- 통일 반대파의 지도자로 좌경화되다:
    - 1926년 스탈린이 부하린과 제휴하여 우경 노선을 취하자, 트로츠키는 지노비예프-카메네프와 손을 잡았다.
    - '통일 반대파'를 결성해 스탈린의 관료주의와 우경 경제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 1927년 통일 반대파는 10월 혁명 10주년 기념 시위를 주도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 그러나 스탈린은 비밀경찰을 동원해 반대파를 탄압했고, 결국 트로츠키를 당에서 제명했다.
- 알마아타로 유배된 후 소련에서 추방당하다:
    - 1928년 1월 트로츠키는 카자흐스탄의 알마아타로 유배를 떠났다.
    - 유배지에서도 반대파 활동을 멈추지 않은 그는 스탈린 비판 팸플릿을 해외에 살포했다.
    - 1929년 2월 트로츠키는 소련을 떠날 것을 명령받고 터키로 추방되었다.
    - 이로써 트로츠키의 소련에서의 정치 생명은 막을 내리고, 망명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 제4인터내셔널 창설과 트로츠키주의의 태동:
    - 1930년대 트로츠키는 터키, 프랑스, 노르웨이, 멕시코 등을 전전하며 반스탈린 투쟁을 전개했다.
    - 그는 소련의 관료적 병폐를 비판하고 국제 사회주의 운동의 쇄신을 주창했다.
    - 1938년에는 '제4인터내셔널'을 창설하여 전 세계 트로츠키주의자들을 규합하고자 했다.
    - 트로츠키의 사상은 서방 좌파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이는 신좌파 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5. 비운의 혁명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

- 스탈린의 광기와 암살 작전:
    - 1930년대 후반 대숙청을 단행한 스탈린은 망명 중인 트로츠키마저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 해외에 잠입한 NKVD 요원들은 트로츠키 암살을 위해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 1940년 5월 트로츠키의 멕시코 자택이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나 모면했다.
    - 그러나 같은 해 8월 20일, 스탈린의 직속 비밀경찰 라몬 메르카데르가 트로츠키의 서재에 침입해 얼음도끼로 그를 습격했다.
- 혁명가의 최후와 사후:
    - 트로츠키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22시간 만에 숨을 거뒀다.
    - 그의 유해는 멕시코시티 교외 쿠에르나바카의 집 뜰에 안장되었다.
    - 비석에는 "여기 20세기를 위해 싸운 한 혁명가가 잠들어 있다" 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 혁명의 영웅에서 역사의 패배자로 전락한 트로츠키의 최후는 격동의 20세기 전반을 응축한 상징이기도 했다.
- 트로츠키의 복권 논쟁과 역사적 유산:
    -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 시대에 이르러 트로츠키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되었다.
    - 트로츠키는 스탈린 독재정치의 희생양으로 부각되었고, 그의 공과가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 그러나 공산당 내에서 트로츠키의 완전한 복권은 현재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 트로츠키의 이론과 실천은 현대 좌파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오늘날에도 열띤 토론의 대상이 되고 있다.

 

 

10월 혁명과 소련 초기 역사의 주역이지만 권력 투쟁에 패배하여 숙청당한 비운의 혁명가 레프 트로츠키. 그의 일대기는 20세기 전반 격동의 소용돌이 그 자체였다.


젊은 시절의 급진 혁명가에서 적군 창설의 영웅으로, 다시 반대파의 영수에서 추방당한 망명객으로의 연속되는 전환. 트로츠키야말로 뒤바뀐 운명과 역사의 아이러니를 온몸으로 체현한 인물이었다.


오늘날에도 트로츠키의 생애는 많은 논쟁과 재해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실 정치에서 번번이 패배했던 트로츠키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관료주의와 전체주의에 저항하던 그의 처절한 투쟁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레닌주의와 트로츠키주의 중 어느 것이 참된 마르크스주의 계승인가를 둘러싼 논쟁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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