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마젤란(Ferdinand Magellan, 1480-1521) - 포르투갈 태생의 항해가 최초로 지구 일주에 성공한 인물로 평가받는 대항해사의 개척자
1. 포르투갈 왕실에서의 성장
- 궁정 페이지에서 승선 군인으로:
- 마젤란은 1480년 포르투갈 북부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 10대에 리스본에서 페이지로 일하며 항해술, 지도제작 등을 배웠습니다.
- 25세 무렵에는 동방으로 향하는 무역선에 군인으로 승선해 항해 경험을 쌓습니다.
- 동인도 원정 참여:
- 마젤란은 1505년 포르투갈의 식민지 확보를 위한 동인도 원정에 참여했습니다.
- 말라카 점령 과정에서 탁월한 전투 지휘력을 발휘해 두각을 나타냅니다.
- 이 시기 마젤란은 동남아시아, 인도양 일대를 누비며 항해에 대한 자신감을 쌓았다고 합니다.
- 국왕의 불신:
- 동남아시아에서의 전공에도 불구하고 마젤란은 포르투갈 국왕의 신임을 얻는 데 실패합니다.
- 그는 아프리카 원정대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누명을 쓰고 왕실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 이런 불운은 마젤란으로 하여금 새로운 항로 개척을 결심하게 한 계기가 됩니다.
2. 스페인에서의 새 출발
- 스페인 왕실과의 계약:
- 1517년 마젤란은 스페인 세비야로 건너가 국왕 카를로스 1세를 알현합니다.
- 그는 서쪽으로 항해해 동남아시아의 향신료 제도까지 갈 수 있다는 원대한 계획을 제시합니다.
- 새로운 항로 개척에 적극적이었던 스페인 왕실은 그와 계약을 맺고 원정을 후원하기로 결정합니다.
- 마젤란 함대의 구성:
- 스페인 왕실은 5척의 배(트리니다드, 산 안토니오, 콘셉시온, 산티아고, 빅토리아호)를 마젤란 원정대에 제공합니다.
- 이 중 트리니다드호는 마젤란 자신이 직접 지휘하는 기함(flag ship)이 됩니다.
- 마젤란 함대에는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에서 온 선원들이 참여했습니다.
- 1519년 9월 출항:
- 마침내 1519년 9월 20일, 마젤란 일행은 세비야의 과달키비르 강 하구를 출발합니다.
- 총 선원 수는 270여 명. 식량과 무기, 그리고 교역을 위한 물품들이 배에 실려 있었습니다.
- 이렇게 시작된 대항해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모험이 될 것이었습니다.
3. 새로운 항로의 발견
- 남미 해안 탐사:
- 마젤란 함대는 대서양을 건너 남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합니다.
- 당시 남미 해안은 제대로 탐사되지 않은 미지의 공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 마젤란은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해안을 따라 남하하며 험준한 해안 지형을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 새로운 해협의 발견:
- 마젤란 원정대 최대의 발견은 남미 남단에서 이뤄졌습니다.
- 1520년 10월 21일, 마젤란은 남미 남단에서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새로운 해협을 발견합니다.
- 오늘날 '마젤란 해협'으로 명명된 이곳은 향후 스페인 선단의 주요 항로가 되었습니다.
- 태평양 항해와 필리핀 도착:
- 마젤란 해협을 통과한 원정대 앞에는 광활하고 평온한 대양이 펼쳐졌습니다.
- 마젤란은 이 바다를 '평화로운 바다'라는 뜻의 '태평양(Pacific)'이라 명명합니다.
- 태평양을 3개월 간 항해한 끝에 마젤란 일행은 1521년 3월 필리핀 군도에 도착합니다.
4. 필리핀에서의 비극
- 세부 섬에서의 충돌:
- 필리핀 남부의 세부 섬에 상륙한 마젤란 일행은 처음엔 주민들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 그러나 마젤란이 강압적으로 주민들에게 기독교 개종을 강요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집니다.
- 급기야 마젤란은 세부 섬의 족장 라푸라푸와 전면전을 벌이게 됩니다.
- 마젤란의 최후:
- 1521년 4월 27일, 원주민 병사들에 포위된 마젤란은 세부 섬 해변에서 끝내 최후를 맞습니다.
-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스페인군은 참패하고 말았고, 마젤란을 비롯해 많은 선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 원정을 주도했던 마젤란의 죽음으로 세계 일주의 꿈은 좌절되는 듯 보였습니다.
- 엘카노의 귀환 항해:
- 마젤란 사후 원정대 지휘권은 부함장 엘카노에게 넘어갑니다.
- 엘카노는 남은 선원들을 이끌고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를 거쳐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귀환합니다.
- 1522년 9월 8일, 마젤란 함대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빅토리아호가 세비야 항에 도착함으로써 인류 최초의 세계일주는 완성됩니다.
마젤란은 비록 직접 세계 일주를 완수하지는 못했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항해가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그의 업적은 항해사에 한 획을 그은 것이었습니다.
대항해 시대를 연 개척자로서 그가 남긴 유산 또한 결코 작지 않습니다. 마젤란 항로의 발견은 향후 스페인 제국 건설의 토대가 되었고, 콜럼버스 이후 정체된 유럽 팽창의 새 지평을 열어젖혔습니다. 그의 항해 일지와 기록들은 당대 지리학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다만 마젤란의 정복자적 일면 또한 간과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필리핀에서의 비극적 최후가 보여주듯 그 역시 원주민 문화를 야만으로 치부하고 기독교 문명을 강요하려 든 것이 사실입니다. 탐험과 정복, 모험과 야욕이 교차했던 대항해 시대의 양면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구는 둥글고 서쪽으로 가면 동쪽에 이를 수 있다. 마젤란이 피로 맺은 진리의 항해였습니다. 교과서 속 영웅으로 기억되는 그의 초상 뒤에는 시대의 아들이었던 한 인간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역사의 격랑을 뚫고 나아간 마젤란, 그의 삶은 모험과 개척의 상징으로 길이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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