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모토 무사시 (宮本武藏, Miyamoto Musashi, 1584-1645) -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이자 兵法家, 예술가. '五輪書'의 저자로도 유명한 사무라이의 표상.
1. 무사시의 소년기
- 기예를 익힌 농민의 아들:
- 무사시는 1584년 일본 하리마 국 미마사카 지방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 아버지 신멘 무니사이는 무예에 능한 하급 무사 출신으로, 무사시에게 어려서부터 검술과 창술을 가르쳤습니다.
- 어머니 오무라 시게츠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 13세, 아버지와의 결별:
- 13살이 되자 무사시는 집을 나가 방랑을 시작합니다.
- 당시 그의 이름은 신멘 벤노스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 방랑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아버지와의 불화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 첫 결투에서의 승리:
- 1596년, 13세의 무사시는 당대 유명 검객 아라키 기헤이와의 결투에서 승리합니다.
- 이 결투에서 보여준 무사시의 빼어난 검술 실력은 주변에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 이때부터 무사시는 각지를 떠돌며 수많은 결투를 벌이게 됩니다.
2. 전국시대를 유랑하며
- 세키가하라 전투 참전:
- 1600년 무사시는 관서의 이시다 미츠나리 군대에 가담해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합니다.
- 이 전투에서 무사시가 속한 서군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에 패하고 말았습니다.
- 이후 무사시는 한동안 행방을 감추고 은둔 생활을 하게 됩니다.
- 전국을 떠돌며 수행:
- 1604년경부터 무사시는 다시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검술을 연마합니다.
- 그는 명산대찰을 순례하고 선승들과 교류하며 심신을 단련했다고 합니다.
- 이 시기 그는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 결투에서의 전승 기록:
- 젊은 시절 무사시는 60차례 이상의 결투를 했지만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 1612년 무사시는 당대 최고 검객 사사키 코지로와의 결투에서 승리합니다.
- 이 유명한 '간류섬 결투'에서의 승리로 무사시는 천하 제일의 검객으로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3. 예술가로서의 무사시
- 뛰어난 서예가이자 화가:
- 검술 외에도 무사시는 서예와 그림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 그의 서예는 힘차면서도 자유분방한 필치로 독특한 경지를 보여줍니다.
- 墨蹟으로 전해지는 무사시의 그림들 또한 剛과 柔가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 彫刻에도 능했던 무사시:
- 무사시는 조각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기묘사에 남아있는 목각 부처상은 무사시의 대표적인 조각 작품으로 전해집니다.
- 일설에는 그가 만년에 집 근처 동굴에서 자화상 돌부처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芸術家集團과의 교우:
- 말년의 무사시는 혼아미 지방을 중심으로 한 예술가 집단과 폭넓게 교류했습니다.
- 그는 이들 예술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예술 이론을 깊이 있게 탐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武와 藝가 하나라는 무사시의 미학관은 이 시기 형성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4. '五輪書'의 탄생
- 제자 테라오에게 보낸 편지:
- 1643년부터 무사시는 제자 테라오 노부요리에게 다섯 편의 편지를 보냅니다.
- 이 편지들에는 무사시가 평생 궁리해온 검술론과 병법, 인생론 등이 담겨있습니다.
- 이것이 바로 후세에 '五輪書'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어 전해지는 유명한 무사시의 유서입니다.
- 五輪의 구성:
- 지, 수, 화, 풍, 공. 五輪書는 이 다섯 가지 자연의 원리에 비유해 무사도의 이치를 풀어낸 책입니다.
- 각 권은 sequential하게 검술의 기본에서 시작해 심오한 병법 사상에 이르기까지를 망라하고 있습니다.
- 오륜서는 검술서인 동시에 삶의 지혜를 담은 철학서로서,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 타계 직전 완성된 五輪書:
- 1645년 5월 무사시는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륜서의 마지막 구절을 써내려갑니다.
-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무사시는 6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 오륜서는 무사시의 평생의 깨달음을 응축한 최후의 역작이 되었습니다.
무사시는 인간 정신의 끝없는 수련과 초월을 몸소 실천한 武人이었습니다. 검술에서 예술로, 예술에서 정신 수행으로. 그의 일생은 자신의 길(道)을 향한 부단한 정진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검객으로서 무사시가 보여준 경지는 兵法을 넘어 一種의 心法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적을 꺾는 검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는 검. 바로 그것이 무사시가 궁극에 도달하고자 한 검의 이치가 아니었을까요.
"검도의 요체는 자신을 이기는 데 있다." 五輪書에 쓰인 무사시의 이 말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큰 메아리가 되어줍니다. 기보다 마음을, 상대방보다 자신을 이기라는 가르침 말입니다. 무사시가 천하 제일의 검객이 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心法을 터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돌부처 앞에서 칼을 놓은 晩年의 무사시. 깨달음에 이른 聖者와도 같은 그의 평온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名利를 초월한 아름다운 삶의 완성. 五輪의 이치대로 살다간 미야모토 무사시의 생애는 오늘도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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