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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 (Fidel Castro, 1926-2016) - 쿠바의 혁명가이자 국가원수

OPYEB 2024.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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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 (Fidel Castro, 1926-2016) - 쿠바의 혁명가이자 국가원수


1. 변호사에서 혁명가로

- 부유한 지주 가문 출신:
    - 카스트로는 1926년 8월 13일, 쿠바 오리엔테 주의 부유한 사탕수수 농장주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 어린 시절 예수회 학교에서 수학한 카스트로는 엘리트 교육을 받았습니다.
    - 1945년 그는 아바나 대학 법대에 입학해 법률을 공부합니다.
- 혁명 활동의 시작:
    - 1947년 카스트로는 도미니카공화국 트루히요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원정에 참가합니다.
    - 이 경험은 그를 본격적인 혁명의 길로 이끈 계기가 되었습니다.
    - 1950년대 초 카스트로는 쿠바 정계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급진파로 부상합니다.
- 몬카다 병영 습격과 투옥:
    - 1953년 7월 26일, 카스트로는 쿠바 동부 산티아고의 몬카다 병영을 습격합니다.
    - 바티스타 독재에 맞선 무장 투쟁의 신호탄이었지만, 작전은 실패로 끝납니다.
    - 카스트로는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투옥됩니다.


2. 쿠바 혁명의 완수

- 26운동과 게릴라전:
    - 1955년 대사면으로 출옥한 카스트로는 멕시코로 망명해 '26운동'을 결성합니다.
    - 1956년 그는 82명의 혁명가와 함께 쿠바로 잠입해 시에라마에스트라 산악지대에 게릴라 기지를 건설합니다.
    - 체 게바라와 함께 2년간의 게릴라전을 전개한 카스트로는 쿠바 국민의 지지를 얻어갑니다.
- 아바나 입성과 혁명정부 수립:
    - 1958년 여름 혁명군은 동부 지역을 장악한 데 이어 연말 대공세로 수도 아바나로 진격합니다.
    - 1959년 1월 1일, 카스트로는 승리를 선언하고 아바나에 입성해 개선 행진을 펼칩니다.
    - 카스트로는 직접 총리직을 맡아 혁명정부를 구성하고 권력을 장악합니다.
- 사회주의 개혁:
    - 1959년 2월 총리직을 맡은 카스트로는 본격적인 개혁정책을 추진합니다.
    - 그는 농지개혁법을 발표해 대농장을 해체하고 소작농에게 토지를 분배했습니다.
    - 이어 외국 자본 국유화, 무상교육·의료 실시 등 사회주의적 정책을 펼쳤습니다.


3. 미국과의 대결

- 대미관계 악화:
    - 혁명 직후 카스트로 정부는 친미 일변도의 기존 외교 노선에서 벗어나 독자 행보를 모색합니다.
    - 그러나 미국 자본 국유화 조치로 양국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습니다.
    - 1961년 미국이 쿠바를 침공한 피그스만 사건을 계기로 카스트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국시로 채택하고 사회주의 국가임을 선언합니다.
- 쿠바 미사일 위기:
    - 1962년 10월,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면서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합니다.
    - 미국의 케네디 행정부는 쿠바 해상 봉쇄에 돌입하고, 세계는 핵전쟁 위기로 치달았습니다.
    - 위기는 결국 미국과 소련 간의 협상으로 해결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카스트로는 국제사회에서 반제국주의 투쟁의 상징이 됩니다.
- 반미 투쟁과 고립:
    - 1960-70년대 카스트로 정부는 친소 노선을 취하며 미국과 전면 대결합니다.
    - 1962년 미국이 쿠바에 대한 경제 봉쇄 조치를 발동하자, 카스트로는 이를 제국주의 압살 책동이라며 강력 반발했습니다.
    - 그러나 쿠바 경제는 소련 원조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고, 고립과 경제난이 심화되었습니다.


4. 지도자로서의 카스트로

- 장기 집권과 개인숭배:
    - 1965년 공산당이 창당되면서 카스트로는 당 제1서기가 되어 국가 권력을 장악합니다.
    - 1976년 신헌법에 따라 그는 국가평의회 의장, 즉 국가원수가 되어 종신 통치 체제를 확립합니다.
    - 대중집회와 연설, 선전선동 등을 통해 '최고지도자' 카스트로에 대한 개인숭배가 심화됩니다.
- 국제 연대 활동:
    - 1960-70년대 카스트로는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사회주의 운동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 앙골라 내전,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혁명 등에 군대를 파견해 개입했습니다.
    - 비동맹운동의 지도자로서도 카스트로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제3세계의 결집을 도모했습니다.
- 경제난과 개혁개방:
    - 1990년 소련 붕괴 이후 원조가 중단되면서 쿠바 경제는 파탄 직전에 몰렸습니다.
    - 이에 카스트로는 관광업 개방, 달러화 사용 허용 등 제한적 개혁조치를 취합니다.
    - 2000년대 들어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과 밀월관계를 다지며 경제 위기를 넘기려 했습니다.
    - 그러나 만성적 경제난과 인권문제로 카스트로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은 지속되었습니다.


5. 카스트로의 유산과 평가

- 은퇴와 사망:
    - 2006년 건강이 악화된 카스트로는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력을 이양합니다.
    - 이후 그는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추고 은둔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 2016년 11월 25일, 카스트로는 9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 혁명가로서의 평가:
    - 카스트로는 쿠바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시키고 평등 사회를 향해 투쟁한 혁명 영웅으로 칭송받습니다.
    - 무상교육과 의료제도는 카스트로 쿠바가 남긴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꼽힙니다.
    - 그러나 장기 독재와 개인숭배, 경제 파탄과 인권 탄압은 카스트로 체제의 과오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피델 카스트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혁명 지도자이자 반제국주의 투사였습니다. 작은 나라 쿠바를 제국주의 강대국 미국에 맞설 수 있는 혁명의 상징으로 만든 것은 카스트로의 불굴의 투지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1인 지배 체제의 폐해와 시장경제 도입의 실패는 '카스트로식 사회주의'의 한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영원한 혁명가 카스트로, 그의 공과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카스트로의 유산은 현대 쿠바와 라틴아메리카 정치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의 반미, 반제국주의 노선은 여전히 많은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권들의 정치적 지향점이 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카스트로가 남긴 경제적 문제와 인권 탄압의 유산은 쿠바의 미래 발전에 큰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카스트로의 사후 쿠바가 겪고 있는 변화와 도전은 혁명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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