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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와 평화 프로세스 (1948-)

OPYEB 2024.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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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엘 건국과 제1차 중동전쟁


- 유대인 정착과 시오니즘 운동: 
    - 19세기 말 시오니즘 운동의 대두로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정착이 본격화되었습니다.
    -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은 유대인들의 '민족적 고향' 건설을 약속한 밸푸어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 이는 아랍 원주민들과의 갈등을 초래했고, 이후 유대-팔레스타인 분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 UN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과 이스라엘 건국:
    -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합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해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1947).
    - 이에 따라 19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습니다.
    - 그러나 아랍 국가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신생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 제1차 중동전쟁과 팔레스타인 난민 발생:
    -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 직후 시작된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국토를 크게 확장했습니다.
    - 반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대거 난민이 되어 주변국으로 쫓겨났습니다(나크바).
    - 분쟁의 뿌리가 된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는 오늘날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2. 제3차 중동전쟁과 요르단강 서안·가자지구 점령


-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결성:
    - 1960년대 들어 난민 수용소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운동이 태동했습니다.
    - 아랍권의 지원을 받은 여러 게릴라 조직들이 결집해 1964년 PLO를 결성했습니다. 
    -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을 통해 독립 국가 건설을 추구한 PLO는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 민족을 대표했습니다.
- 6일 전쟁과 영토 점령:
    - 1967년 6월,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의 공격에 선제공격으로 대응하여 전쟁을 개시했습니다(제3차 중동전쟁).
    - 불과 엿새 만에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 골란고원, 서안지구, 가자지구를 점령하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 특히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의 점령으로 이스라엘은 성지를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국제법상 불법이며 중동 분쟁을 심화시켰습니다.

 



3. 오슬로 평화 협정과 평화 프로세스 


- 제1차 인티파다와 PLO의 전향:
    - 1987년, 가자지구와 서안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광범한 저항 운동인 인티파다가 일어났습니다.
    - 이를 계기로 국제여론이 변화하자, PLO는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고 평화 협상에 나설 것을 천명했습니다(1988).
    - 이스라엘도 PLO를 팔레스타인 민족의 대표로 인정하면서 평화 프로세스가 시작되었습니다.
- 오슬로 협정의 체결과 난항:
    - 1993년, 이스라엘과 PLO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에 합의한 오슬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 이에 따라 가자지구와 여리코에 자치정부(팔레스타인권력기구)가 들어섰습니다. 
    - 그러나 핵심쟁점인 예루살렘, 정착촌, 난민 문제 등은 난제로 남았고, 평화 프로세스는 차질을 빚었습니다.
- 평화 협상의 좌절과 분쟁의 격화:
    - 2000년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에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최종적 지위 협상이 시도되었으나 결렬되었습니다. 
    - 뒤이어 일어난 제2차 인티파다로 유혈사태가 빚어졌고 평화 프로세스는 중단되었습니다.
    -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 팔레스타인의 로켓포 공격과 테러가 계속되면서 악순환의 고리가 굳어졌습니다.

 

 


4. 분쟁의 장기화와 평화의 모색 


- 분리장벽 건설과 가자지구 봉쇄:
    - 2000년대 들어 이스라엘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요르단강 서안에 분리장벽을 건설했습니다.
    - 팔레스타인 영토를 잠식하고 주민 생활을 제약하는 장벽 건설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 2007년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하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군사작전을 되풀이했습니다.
- 미국의 중재 노력과 한계:
    - 오바마 행정부는 정착촌 동결을 통한 협상 재개를 시도했으나 양측의 입장차로 무산되었습니다.
    - 트럼프 행정부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등 일방적 친이스라엘 정책을 폈습니다.
    - 바이든 정부는 '두 국가 해법'을 재확인했으나 구체적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 새로운 접근법의 모색:
    - 팔레스타인 내부적으로는 비폭력 저항 운동, 일국가 해법 등 새로운 대안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 국제사회에서는 이스라엘 불법점령 종식, 유엔 안보리 결의 실행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 역내 국가들 간에는 아랍-이스라엘 데탕트 무드 속에 실리적 협력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감지됩니다.

 



5. 결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20세기 중반 이래 중동의 뜨거운 불씨로 남아있는 대표적 국제분쟁입니다. 두 민족의 민족자결권이 충돌하고, 식민주의와 냉전의 유산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이기에 쉽사리 해법을 찾기 어려운 난제입니다. 
수십 년간 전쟁과 폭력, 증오와 피맺힘이 반복되면서 평화의 싹이 여러 차례 휘청거렸습니다.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양측 지도부의 정치적 의지 부족, 역내 정세의 불안정 등으로 난관에 부딪혀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평화롭고 안전한 삶에 대한 열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오랜 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공존과 화해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이는 결코 한 민족만의 과제가 아닌, 국제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무엇보다 평등한 권리와 상호존중의 정신이 평화의 토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제법과 유엔 결의에 기초해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을 종식하고, 독립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보장해야 합니다. '두 국가 해법'의 기본 원칙 위에서 동예루살렘을 양측의 수도로 인정하는 등 창의적 타협이 모색되어야 합니다.
우리 한국인도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민족으로서, 중동 평화 정착을 위해 국제사회와 연대하고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작은 힘이나마 평화의 다리가 되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민족이 화합과 공영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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