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말 압델 나세르 (Gamal Abdel Nasser, 1918-1970) - 이집트 제2대 대통령, 아랍 민족주의의 상징
1. 청년 장교에서 자유장교단으로
- 알렉산드리아 출신:
- 나세르는 1918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 아버지는 우체국 직원이었고, 어머니는 수단 누비아 지역 출신이었습니다.
- 유년기에 나세르는 이슬람과 아랍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키웠습니다.
- 군 경력과 영국에 대한 반감:
- 1937년 나세르는 이집트 왕립군사학교에 입교해 장교로 임관합니다.
- 당시 이집트는 영국의 준 식민지로서, 영국군이 수에즈 운하 지대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 청년 장교 나세르는 영국의 내정 간섭을 목격하며 식민주의에 대한 반감을 키워갑니다.
- 자유장교단과 1952년 쿠데타:
-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전쟁에서 이집트군이 패배하자, 나세르는 비밀결사 자유장교단을 조직해 반영 운동에 나섭니다.
- 1952년 7월, 자유장교단의 장교들이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이집트 왕정을 전복시킵니다.
- 이로써 나세르는 혁명 정부의 주역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2. 수에즈 운하 국유화와 영국·프랑스·이스라엘과의 전쟁
- 내각 수반으로서의 개혁정책:
- 1954년 나세르는 혁명평의회 의장이 되어 이집트의 실질적 통치자로 군림합니다.
- 1956년 헌법에 따라 그는 이집트 공화국 초대 대통령에 선출됩니다.
- 나세르는 토지개혁을 추진하고 나일 강 아스완 하이 댐 건설 계획을 발표하는 등 근대화 정책을 폅니다.
- 수에즈 운하 국유화 선언:
- 1956년 7월 26일 나세르는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전격 선언합니다.
- 1869년 개통된 수에즈 운하는 영불 자본이 장악하고 있었고, 이는 이집트 주권을 침해하는 상징이었습니다.
- 운하 국유화로 나세르는 이집트인들의 영웅으로 부상합니다.
-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의 군사개입:
- 나세르의 국유화 조치에 반발한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공모해 이집트를 공격합니다.
- 1956년 10월 29일 이스라엘군이 시나이 반도를 침공했고, 영불군도 수에즈 운하 지대 폭격을 개시했습니다.
- 그러나 국제여론의 반발과 미국의 압박으로 영불은 작전을 중단하고 이집트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3. 아랍 민족주의의 상징
- 아랍 연방공화국 창설 시도:
- 수에즈 위기 속에서 승리를 거둔 나세르는 범아랍주의의 구심점으로 부상합니다.
- 1958년 나세르는 시리아와 연방을 결성해 아랍연방공화국(UAR)을 출범시킵니다.
- 그러나 시리아가 이탈함에 따라 UAR는 3년 만에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 아랍 사회주의 노선:
- 나세르는 아랍 통합의 기치 아래 이집트에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합니다.
- 1961년 그는 대규모 국유화 조치를 단행하고 경제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 나세르의 아랍 사회주의는 소련과의 관계 강화로 이어졌습니다.
- 제3세계의 지도자:
- 1950-60년대 나세르는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국가들의 지지를 받는 제3세계의 대변자 역할을 했습니다.
- 1955년 그는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 참석해 반식민주의 비동맹 노선을 표방했습니다.
- 냉전 속에서 나세르는 양 진영을 오가며 이집트의 이익을 관철시키려 노력했습니다.
4. 6일 전쟁과 나세르의 말년
- 이스라엘과의 대결 격화:
- 1960년대 중반 나세르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이집트로 받아들이는 등 반이스라엘 정책을 강화합니다.
- 1967년 5월 나세르는 시나이 반도에 군대를 전개하고 티란 해협을 봉쇄함으로써 이스라엘을 자극했습니다.
- 급기야 1967년 6월 5일, 이스라엘은 이집트·요르단·시리아를 상대로 선제공격을 감행하게 됩니다.
- 6일 전쟁의 패배:
- 6일 전쟁은 나세르에게 치욕적인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 기습공격을 받은 이집트군은 시나이 반도에서 궤멸당하고, 수에즈 운하 동쪽 지역을 상실합니다.
- 6일 만에 종전된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완승으로 끝났고, 나세르의 권위는 실추되었습니다.
- 사임 번복과 사후:
- 6일 전쟁 직후 나세르는 대통령직에서 사임합니다.
- 그러나 수많은 지지자들의 요청으로 그는 사임을 번복하고 대통령직을 유지합니다.
- 1970년 9월 28일, 나세르는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서거했습니다.
가말 압델 나세르는 이집트의 근대화와 탈식민을 이끈 20세기 아랍의 영웅이었습니다. 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는 제국주의에 저항한 民族의 승리로 기억됩니다. 범아랍주의로 아랍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한 것도 나세르의 위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랍 사회주의는 이집트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했고, 이스라엘과의 대결에서 연거푸 패배한 것은 나세르 정책의 한계를 보여주었습니다. 1인 지배 체제 아래 정치적 자유가 억압된 것도 지적되어야 할 대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세르가 이집트와 아랍에 남긴 민족주의의 유산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의 카리스마는 서거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아랍인들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나세르의 유산은 현대 이집트와 아랍 세계에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의 반제국주의, 아랍 민족주의 사상은 오늘날 중동 정치의 중요한 이념적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나세르가 추진한 토지 개혁과 교육 정책은 이집트의 사회 경제적 발전에 기여했으며, 그의 비동맹 노선은 제3세계 국가들의 외교 정책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과 군부 중심의 정치 체제는 이집트의 민주화 과정에 장애물로 작용했습니다. 나세르의 복잡한 유산은 오늘날 중동의 정치, 사회, 경제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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